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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최창근] 녹림처사(綠林處士)


최창근 기자 / chchki@hanmail.net입력 : 2018년 03월 13일
 
ⓒ 포천신문  
綠林處士 초록빛 녹 / 수풀 림 / 살 처 / 선비 사

도적의 소굴. 패거리들의 집단

출전 한서(漢書 한나라 역사서)중 왕망전(王莽傳) 녹림은 푸른 숲이란 의미인데 이것이 녹림(綠林)의 호걸(豪傑)이라든가, 녹림에 몸을 담는다고 하면 푸른 숲의 의미와는 너무나 다른 의미로 나타난다. 비슷한 산림처사(山林處士)와의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

옛날에는 벼슬도 세속도 마다하고 산속에 파묻혀 글이나 읽고 지내는 사람을 산림처사라 불렀는데, 특히 이름난 학자에게는 나라에서 산림이란 칭호를 내리기도 했다. 산림과는 달리 녹림에는 처사가 있을 수 없고, 있다면 세상을 등진 호걸이 있을 수 있다. 녹림호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라는 수호지(水滸志)가 될 것이다.

결국 녹림호걸은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볼 때는 도적에 불과한 것이다. 전한(前漢) 말 왕망(王莽)이 대사마의 직에 있다가 왕위를 찬탈하여 천자가 되고, 국호를 신(新)이라 고치고 나서, 새로운 정책이 눈 코 뜰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관직도 바뀌고 지명도 바뀌었다. 토지의 겸병(兼倂)을 없애고, 노비를 해방한다고 하여 왕전제도(王田制度)와 노비제도가 정해졌으나 결과는 도리어 반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난해한 세칙에 걸려 도리어 토지를 잃고 노비가 되는 자가 꼬리를 물게 되었다. 화폐가 8년 동안에 네 차례나 바뀌고, 다른 경제 정책이 발표되어 시행이 되었으나, 결과는 일반국민의 생활은 점점 궁핍해져 생업을 포기하고 농촌을 떠나는 인구가 많아짐으로 농촌은 황폐해 졌다. 왕망은 세력이 커진 지방 호족과 민중 쌍방으로부터 원한을 샀다. 이 혼란 속에서 천봉(天鳳) 4년(AD 15년) 변경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대규모의 반란이 연달아 폭발했다.

AD 15년 남방에서는 녹림병(綠林兵)이 일어나고, 호북 서부는 수년에 걸쳐 가뭄이 계속되어 굶주린 농민은 들풀은 베려고 서로 다투고 있었다. 이 다툼을 진정시키고 신망을 얻은 신시(新市)의 왕광과 왕봉 두 사람이었다. 수백 명의 신임을 얻은 왕광과 왕봉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궁민(窮民)을 규합하여 거병(擧兵)을 하니 수만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주와 관의 창고를 습격하여 굶주린 배를 채우고 관원을 공격하여 그들의 세력은 큰 군도(群盜)가되어 호북성 녹림산에 웅거하였다. 스스로 녹림군이라 칭하고 광무제를 도와 후한을 건국하는데 일조하였다.

AD 18년에 적미의 난이 일어났고, 남양군(南陽郡)에서 옹립된 유현(劉玄)을 토벌하러 보낸 신의 100만 군대도 곤양(昆陽)전투에서 경시제 휘하의 유수(劉秀)에게 패배하여, 이것으로 각지에 군웅이 할거하는 대혼란에 빠진다. 그의 신하도 배신하고, 장안에는 경시제의 군대가 입성, 왕망은 그 혼란 중에서 두오(杜吳)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수급은 경시제가 있던 성으로 보내졌으며, 몸은 공을 세우려는 사람들이 달려들어 마구 찢어지고 흩어졌다고 한다.

이들은 스스로 산에서 내려와 하강군(下江軍) 또는 신시병(新市兵)이 되는데, 장군이나 군사로 남는 사람도 있고, 평민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녹림거사로 지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왕망은 진시황처럼 단기간 집권한 황제로 기록되었으며, 진시황제는 혹평과 찬사를 받으나 왕망은 비판을 더 받는 황제로 남는다.
   
참고한 자료 : [한서 - 왕망전(王莽傳)] [서강대자전 - 녹림처사(綠林處士)]. [이야기 고사성어-장기근 박사 감수 명문당 출판 책 중에서-녹림처사(綠林處士)]

최창근 / 포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창근 기자 / chchki@hanmail.net입력 : 2018년 0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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