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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칼럼] 광해군의 불행한 가족사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4년 10월 29일
↑↑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의 저자
ⓒ (주)포천신문사
KBS2에서 11월중에 “왕의 얼굴” 제하의 드라마를 방영할 예정인데 줄거리는 선조의 장자(長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적자(嫡子)도 아니었던 광해군의 관상(觀相)을 포인트로 하여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평소에 숫자의 의미를 중시하는데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겠으나 요새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광해군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광해군이 조선왕조 15대 임금이면서 재위 기간이 15년이라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재위 순서와 재위 기간이 같다는 점이다.

아울러 포천신문 2014년 10월 21일자“광해군 외교정책의 역사적 교훈” 제하의 칼럼에 이어서 본 칼럼도 광해군 관련 내용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특히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불행하였던 그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다루려고 한다.

필자가 광해군에 대하여 최초로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어느 덧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구체적으로 2008년 2월 9일 KBS1 “한국사傳”에서 [고독한 왕의 투쟁]“명분이냐 실리냐”제하의 제목으로 광해군을 재조명하는 방송을 시청한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이후“광해군은 반드시 재평가 되어야 한다” 제하의 칼럼을 남긴 바 있다.

여기서 본 칼럼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어우당 유몽인을 소개한다.

어우당은 조선 최초의 야담집(野談集)이라 할 수 있는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학자인데, 뜻밖에 어우당이 인조반정 이후 서인들에 의하여 처형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우당이 처형당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상부(孀婦)”라는 한편의 시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시에는 광해군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 드러나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고려말 포은 정몽주가 이방원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나타낸 단심가(丹心歌)와 일맥상통한 면이 있었다고 본다.

당시 서인정권에서 어우당이 큰 인물이었기에 일부에서는 구명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광해군에 대한 어우당의 충성심이 대단한 것을 알게 되어 결국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는 것이니 참으로 광해군 시대에 보기 드문 충신(忠臣)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가 광해군의 가족사를 칼럼으로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10월 20일 그동안 전혀 몰랐던 광해군 손녀의 존재를 최초로 알게 된 이후였다.

광해군은 본래 폐비(廢妃) 유씨로부터 3남이 있었으며, 후궁인 숙의(淑儀) 윤씨로부터 1녀가 있었다.

그러나 3남중에서 2남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결국은 한명이 남으니 이가 곧 왕세자에서 하루아침에 폐세자가 되었던 이질(李侄)이었다.

아울러 광해군의 유일한 딸인 옹주는 숙의(淑儀) 윤씨 소생이며, 1619년(광해 11년)에 출생하였다.

그런데 1623년(인조 1년)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하여 폐위(廢位)가 되면서 폐비(廢妃) 유씨를 비롯하여 폐세자와 폐세자빈이 전부 강화도로 유배를 당한다.

그러나 옹주는 5세라는 어린 나이에다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점이 감안되어 유배를 가지 않고 외가에서 기르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생모(生母)인 숙의(淑儀) 윤씨는 인조반정 그 이튿날에 전격적으로 처형된다.

그 이후 옹주는 외가에서 머무르다가 광해군이 승하하고 3년상을 치른 이후에야 종친의 주선으로 25세에 음성박씨 문중의 박징원에게 하가(下嫁)한다.

광해군의 유일한 딸이었던 옹주는 2남 3녀를 소생하고 1664년(현종 5년)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한편 강화도로 유배간 광해군을 비롯하여 폐비(廢妃) 유씨,폐세자와 폐세자빈도 결국 불행한 삶을 마치게 된다.

먼저 폐세자는 탈출을 하려다가 결국 발각되어 그 충격으로 폐세자빈이 며칠후에 자결하고 이어서 폐세자도 결국 의금부 도사의 명에 의하여 자결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폐세자의 비보(悲報)를 알게 된 폐비(廢妃) 유씨도 결국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하루아침에 국왕에서 폐주(廢主)의 신분으로 전락한 광해군이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족들의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강화도에서 교동을 거쳐 병자호란 이후에 다시 제주도로 이배(移配)하게 되며 마침내 그 곳에서 천추(千秋)의 한(恨)을 남긴 채 1641년(인조 19년) 7월 1일 향년 67세를 일기로 승하한다.

사실 필자는 그동안 광해군의 혈통은 여기에서 단절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놀랍게도 자결한 폐세자의 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광해군의 손녀는 의성김씨 문중의 후손 김문거에게 하가(下嫁)한 것으로 알려 졌는데, 과연 어떤 사연으로 광해군의 유일한 친손녀가 의성김씨 문중으로 하가(下嫁)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그 경위를 추적할 생각이다.

이상과 같이 광해군의 불행한 가족사를 살펴보았는데 15년간 조선의 국왕으로 재위하였으나 결국 폐주(廢主)가 되어 천추(千秋)의 한(恨)을 남긴 채 승하한 광해군을 비롯하여 폐비(廢妃) 유씨, 폐세자 부부, 광해군의 딸과 더불어 광해군 손녀의 혼백(魂魄)이 위로받기를 충심으로 염원한다.

박관우 / pgu77@naver.com
역사작가, 칼럼니스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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