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3-09-25 오후 04:31:2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칼럼종합

[칼럼=이임성] 거짓말탐지기, 국가의 은밀한 폭력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9월 07일
 
 
이임성 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총회 의장, 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진술거부권이다. 누구에게나 법원, 검찰 경찰이나 행정기관에게서 어떤 질문을 받을 때 답변하지 않아도 되는 헌법상의 권리가 있다. 덧붙여 자신이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성이 있는 질문에 거짓말로 방어하고 빠져나가는 것도 허용된다. 거짓말한 것 그 자체 때문에 처벌받지는 않는다. 우리 헌법은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말도 진술거부권으로 보호해준다.

세기의 재판, 어떤 피고인의 운명을 극단적으로 가른 진술거부권 케이스를 본다.

1994년 6월 12일 늦은 밤, LA의 지중해풍 주택가에서 미식축구선수 O.J. 심슨 전처인 영화배우 니콜 브라운 심슨과 인근 레스토랑 종업원 론 골드먼이 피투성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LA경찰이 현장에서 발견한 범인의 혈액과 심슨 혈액의 DNA가 일치했다. 심슨에게는 가정폭력 전력도 있었다.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특수제작된 명품 구두의 발자국 크기와 심슨 발크기가 같았다. 심슨 집과 차에서 가죽장갑, 피묻은 양말 등도 발견되었다. 여러가지 증거는 누가봐도 심슨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심슨은 모든 진술을 거부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자신의 살인혐의 자체를 부인했다. 재판은 무려 2년 동안 진행되었다. 그런데 12명 배심원들은 종국에 무죄평결을 내렸다. 거의 전원이 흑인이었던 배심원 구성이 함정이기도 했다. 다만 그대로 사건이 끝나지는 않았다. 형사 무죄평결후 1년 지나서 시작된 민사 배상금소송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민사소송에서는 진술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심슨은 원고측 변호인들의 노련한 유도신문 전략에 말려들었다. 변호인들의 돌려치기 질문에 스스로 흥분한 다혈질 심슨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을 꺼내어 인정하고야 말았다. 배심원들은 심슨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심슨은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1,250만달러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심슨은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민사책임을 지고 파산하는 결말을 맞았다. 사필귀정인가.

빌 클린턴 대통령은 평결직후 성명을 냈다. "배심원단의 무죄평결을 존중해야 하는 게 사법제도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서운 범죄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수사실무에서 과학수사 일종으로 거짓말탐지기 수사기법이 자주 활용되고 있다. 거짓말탐지기라는 용어는 공식 명칭은 아니다. 경찰은 '폴리그래프'로, 검찰은 '심리생리분석기'로 부른 다. 검사받는 사람의 피부에 여러 가지 기록측정기를 부착한 후 질문에 답변할 때 나타나는 호흡, 맥박, 긴장도 등 미세한 전기반응을 측정해내는 기구다.

대부분 경찰청과 검찰청에는 거짓말탐지기실이 설치되어 있고, 전담 수사관도 배치되어 있다. 통상 한번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내외다. 결과는 열흘정도 걸리면 나온다. 대략 <거짓반응>과 <진실반응> 및 <판단불능> 세가지로 나타난다. 담당수사관 판단하에 결론없이 <중도종결>하기도 한다.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의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과 관련하여, 대법원(2005도130 판결)은 엄격한 요건을 따진다. 우선 (1) 거짓말하면 심리상태의 변동이 일어나고, (2) 심리상태의 변동은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3) 생리적 반응을 보면 거짓인지 아닌지를 알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게다가 (4) 거짓말 탐지기가 생리적 반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하고, (5) 담당 수사관은 기계가 측정한 내용을 정확하게 판독할 능력을 갖춘 경우라야 한다. 

이 경우에만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부여한다. 그런데, 사실상 대법원이 제시한 허용기준을 충족할 기계 자체가 없다. 다른 요건도 과학적으로 충족확인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의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 업무를 하다보면 형사사건 의뢰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수사절차가 <거짓말탐지기 검사>다. 물론 이는 스스로 동의하여 진행되는 임의수사다.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외뢰인들은 거짓말 탐지기검사에 체포나 압수수색에 버금가는 정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혐의유무와 별 상관없이 다들 그렇게 느낀다.

변호사로서도 딜레마다. 의뢰인들은 불쑥 자발적으로 검사에 동의를 해놓고서 불안감, 압박감을 호소한다. 우황청심환을 잔뜩 먹고는 밤새 한숨 못잤다고 말한다. 지정받은 당일에 와서 피할수 있는지, 방안을 묻는다. 간혹 의뢰인의 상태를 보고 어쩔수 없이 포기를 통보하기도 한다. 괘씸죄로 찍힐 게 뻔하지만 그걸 각오하고서 말이다.

이 틈새를 불안 공포 마케팅도 나타났다. 새로 등장한 시장이다. 거짓말탐지기 전문가 또는 수사관 출신들이 차린 사설업체가 법조타운 여러 곳에 있다. 이들은 SNS나 언론에 광고도 많이들 한다. 한 회당 백만원 이상의 비용을 받고 오리엔테이션을 시켜준다. 예행연습이다. 성범죄에 관련되어 조사받는 이들이 특히 필요성을 느끼는듯 하다. 강간, 강제추행 뿐만 아니라 카메라이용촬영, 사이버, 지하철 성범죄 등 모든 유형이 거의 동일하다. 물론 먼저 경험한다고 해서 조사받을때 평온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성황리에 영업중이라고 한다.

이렇듯 거짓말탐지기 검사절차는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일단 거짓말탐지기 검사결과가 소송법상 아무런 증거능력이 없음에도 너무 자주 활용되는게 거슬린다. 수사기관은 통상 거짓말탐지기를 태운다고 표현한다. 수사기관이 부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심증형성을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지나치게 거짓말탐지기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거짓말 반응이 나오면 사건처리가 편하니 유혹을 느낄 만하다. 이는 너무나도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수사기관은 이미 여러 차례의 조사와 신문에서 많은 진술증거를 획득한 상태다. 그럼에도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하는 건 졸열하다. 과학수사를 빙자하여 피조사자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사실상의 진술강요이고 자백 압박이다. 수사기관의 능력을 의심받게 하는 행위다.

실무 변호사의 입장에서 볼 때, 수사기관의 체포, 구금, 압수ㆍ수색, 소환과 피의자신문 등은 막강한 권한이다. 수사권을 적정하게 행사하여 얼마든지 스마트폰, 통장, 신용카드, 인터넷 SNS기록, 하이패스, 블랙박스, 길거리 방범용 CCTV까지 모든 걸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피조사자의 일상생활도 빠짐없이 추적하여 복원해낸다. 말그대로 빅브라더의 세상이다.

그럼에도 국가기관이 피조사자라는 한없이 불안한 지위에 떨어진 시민한테 거짓말탐지기 태우는 것까지 해야 할까. 그래야만 속시원할까. 막연한 불안감에 떨고 있는 피조자사한테 마치 젠틀맨처럼 거짓말탐지기에 스스로 응하겠느냐,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어떤 때는 막무가내로 동의하라는 태세를 보이면서 말이다. 은밀한 폭력행사이고, 잘못된 수사관행이라고 느낀다.

국가수사기관이 거짓말탐지기 검사 동의여부를 묻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심적 부담을 준다.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교묘하게 헌법상 보장된 진술거부권을 형해화한다. 따라서 국가는 시민한테 거짓말탐지기 검사에 동의하겠느냐, 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실무적으로는 위법수사에 포함시켜 금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쓸모없다는건 아니다. 경찰, 검찰에는 대당 3,000만원도 훌쩍 넘는 거짓말탐지기가 수십대나 있다. 전문 검사관도 그만큼 근무한다. 이를 기관 창고에 쳐박거나 용도폐기할 수는 없다.

최선의 방안을 제시한다면, 조사대상에 오른 시민이 먼저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요구하는 경우에만 실시하면 어떨까. 힘없는 시민이 무고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거짓말탐지기를 활용하도록 하자. 반드시 조사대상자가 먼저 요구해야한다. 검사비용도 당연히 국가 부담으로 해야한다.

수사기관은 어떠한 경우라도 조사대상자한테 먼저 거짓말탐지기 검사에 응하겠느냐, 묻지 말기 바란다. 수사기관의 더 당당하고 자신있는 태도를 기대한다.

이임성 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 총회 의장, 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9월 07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생활상식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9,935       오늘 방문자 수 : 69,431
총 방문자 수 : 66,508,528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도 포천시 해룡로 130-38(동교동 213-4) 고은빌딩
발행인·편집인 : 김현영 / mail: ipcs21@hanmail.net / Tel: 031-542-1506~7 / Fax : 031-542-111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다50007 / 등록일 : 2000년 8월 18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영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