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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동규] 辛丑年 소해를 맞아, 勤勉·順從의 美德을 讚美 (1편)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20일
 
ⓒ 포천신문  
1. 소해의 영합(迎合)과 생태(生態)
온 세계인이 코로나 감염(感染)으로 인하여 안녕과 일상에서 난감(難堪)했던 세난(世難)의 경자년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소처럼 일해야 할 2021년 새해 신축년(辛丑年) 소해를 맞았다.

설은 우리나라 전통의 민속일(民俗日)로 세수(歲首)·세시(歲時)·연두(年頭) 등으로 불러내려 왔고, 매년 간지(干支)의 태세(太歲)로 연호(年號)를 사용해 내려왔는데 금년이 신축년 소의 해다.

소는 12 지지(地支)에서는 둘째로 축(丑)이요, 소의 총칭은 우(牛), 암소는 빈(牝), 수소는 모(牡), 왜식으로는 수소를 웅우(雄牛), 암소를 자우(雌牛)로 표기했다. 우리나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재래 수소를 황소라 부르고, 토속적(土俗的)으로 기르던 우리 소를 한우(韓牛)로 부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키웠다.

특히 소는 예로부터 천지(天地)·종묘(宗廟)·고사(告祀)를 지낼 때 제물(祭物)로 제상(祭床)에 먼저 올랐다. 이런 연유로 희생(犧牲)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희생은 남을 위해서 목숨이나 혹은 권리 등을 버리거나 빼앗기는 일을 말함인데 두 글자의 의미부(意味部)는 우(牛)자 부수(部首)로 소를 뜻하며, 음운부(音韻部)인 희(羲)·생(生)의 한자라 쉽게 자해(字解)가 된다. (이어서 계속)

소는 12지지(地支) 가운데 두 번째 동물이다. 소는 척색동물문(脊索動物門)·포유강(哺乳綱)·소목·소과·소속·종소에 속한 초식동물(草食動物)로 가축화(家畜化)된 소는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한 개의 위(胃)를 가졌으며 반추동물(反芻動物)로 소화(消化)가 잘 되지 않는 먹이를 반복하여 게워내고, 이를 새김질하여 다시 삼켜 소화시킨다.

2. 농경사회에서의 소의 공용(功庸)
소는 산업화 이전에는 주로 짐을 나르고 달구지와 쟁기를 끄는데 이용되었고, 쇠고기와 가죽 우유 뼈 등을 얻기 위해 길렀다. 그래서 속담에 ‘소는 버릴 것이 없다.’고 했다. 짐을 운송하는 수단으로 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인도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종교적 의식에서 신과 비슷한 예우(禮遇)를 받으며 숭배(崇拜)의 대상이 되어 먹지 않는 것은 이는 힌두교의 교리 때문이다. 그래서 소를 대접하는 말로 우공(牛公)이라고까지 불러 주게 되었다.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성어는 소의 느린 걸음으로도 만리 길을 갈 수 있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자못 크다. 비슷한 비유 성어로 적토성산(積土成山)·적진성산(積塵成山)·적소성대(積小成大)가 있다.

우리나라 민속에 소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 민속이 주로 농경문화(農耕文化) 중심으로 발달되어 농사의 주역인 소가 여러 풍속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정월 첫 축일(丑日)은 소의 날이라 하여 소를 쉬게 하고 사람과 같이 밥과 나물을 잘 먹였는데 소에 관한 설화(說話)가 숱하게 많다.

3. 오랜 전통적인 소의 양목(養牧)
소를 한 가족처럼 기를 때에 소에 대한 배려가 각별(恪別)했고, 겨울에는 짚으로 짠 덕석을 즉 우의(牛衣)를 해 입혀주었고, 습하지 않게 봄이면 외양간을 먼저 치웠고, 이슬 묻은 풀은 먹이지 아니 했으며, 빗으로 자식을 빗겨주듯 빗겨주었다. 길을 떠날 때는 짚으로 짠 짚신을 삼아서 신게 하여 발굽이 닳지 않도록 배려해 주기까지 했었다.

겨울밤이면 마구간(馬廐間)을 자주 들여다보고 건강을 확인하고, 이른 새벽에 소죽을 끓여 사람보다 먼저 먹게 했으며 소죽에 콩이나 비지 따위를 주어 살찌게 했다. 소는 성질이 우직(愚直)하고 순박(淳朴)하여 성급하지 않는 소의 천성(天性)은 은근과 끈기,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氣質)과 잘 융화(融化)되어 전통적으로 소를 사랑했다.

과거 모 집권당에서 당의 상징(象徵) 동물로 황소를 정했는데 황소처럼 무던히도 쉬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자함이요, 정치를 주인(주민)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의미로 황소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한다.

지난 해 8월 53일 장마 때, 폭우와 긴 장마로 인해서 강과 저수지가 범람(氾濫)하면서 집단 우사(牛舍)에서 갇혀 머리만을 내놓고 위기상황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소떼들을 참아볼 수 없어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모 부락에서는 저수지의 범람(氾濫)으로 700 여 마리의 소를 수장(水葬)했다는 영상을 차마 볼 수 없었고, 죽은 소를 향해서 위령제(慰靈祭)를 지내는 소 주인들의 애통해 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가축의 넋을 기리는 것을 방송에서 위령제라고 했는데 이는 축혼제(畜魂祭)임을 바로 잡는다.

4. 소 품성(品性)과 순량(馴良)
소는 온순하며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잘 순종(順從)한다. 이러한 소의 습성(習性)이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 있다고 해서 ‘소가 말 없어도 12가지 (德)이 있다고 했다.’ 흔히들 소띠 사람들은 소의 근면성(勤勉性)을 닮아서 근면하기가 다른 띠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만 고집이 대단하여 ’황소고집‘ 이라고 했다. 심한 표현으로 ‘소죽은 귀신같다.’고까지 혹평(酷評)하기도 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해내는 것이 소띠 사람들이다.’또한 결단력이 있어 ’쇠뿔은 단김에 빼다’처럼 의지가 강해 강자에게는 무릎을 꿇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예상 외로 인정(人情)과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각자무치(角者無齒)란 뿔이 있는 짐승은 이빨이 없다는 말로 소를 지칭하는데 소한테 받혀 죽은 사람은 있어도 소 이빨에 물려서 죽은 사람은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소는 뿔은 있지만 이가 없기 때문이다. 실은 소의 이빨이 없는 것이 아니고 윗니만 있기 때문에 물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가 유년시절 집에서 가까운 우시장에 선친을 따라 가노라면 소를 사려고 하는 사람들은 소입을 벌려서 이빨 수로 나이를 확인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래서 소는 순량(馴良)한 짐승이라고 했다.

5. 소가 인간에게 주는 풍윤(豊潤)
농경사회에서는 예나 이제나 빈부(貧富)의 격차가 심해서 부농이 빈농에게 송아지를 주어 먹이게 하여 그 대신 낳은 첫 송아지를 주고, 어미 소는 되돌려 받는 즉 새끼를 친 뒤 주인과 나누어 갖는 배내가 농가에 성행했고, 그 당시는 웬만한 부농 집에서 빈농 집으로 배내기 소를 주어 기르게 되었는데 소작농(小作農)의 형태로 반양(半養)이라고 했다.

5~60년대는 농가에서 급히 많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키우던 소를 우시장에 몰고 가서 팔아서 현금화했고, 자식의 학비로 소 한 마리 팔아 1개 학기 등록금으로 충당했기에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 아닌 우골탑(牛骨塔)으로 폄하(貶下)하기도 했으나, 그 후 산업사회에서 농경문화(農耕文化)가 쇠퇴(衰退)하면서 집단사육(集團飼育)·기업축산(企業畜産)으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전통적인 씨름판에는 우승자에게 주는 상품으로 황소를 주어 선수와 관객의 눈길을 끌며 인기의 대상이 되었고, 근간에는 투우(鬪牛)의 광경을 가끔 영상을 통해서 보게 되는데 그 황우들의 투지(鬪志)를 볼 수 있어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투우는 소뿔을 밀어붙이면서 힘을 겨루는 경기이기 때문에 뿔이 크고 단단해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으며, 이 때에 소의 두 뿔이 서로 길이가 같아서 우각(牛角)이라 하여 역량(力量)·기량(技倆) 등의 우열(優劣)이 없는 일을 말함인데 호각(互角)과 같이 쓰인 단어다.

박동규 / 전 영북고 교장, 현 경기북부노인지도자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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