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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칼럼] 담보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24일
 
ⓒ 포천신문  
혈압약을 복용하는지 20년이 넘었다. 그 긴 세월 동안 한 병원에서만 진단을 받고 약 처방을 받았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약도 타왔지만 의약 분업이 된 후에는 약은 약국에서 구했다. 마침 혈압약이 떨어져서 병원에 전화를했다. 혹시나 요즘 의사들이 파업을 한다기에 헛걸음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전화를 받는 직원이 병원 문 열었단다. 그런데 의사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 언제쯤 가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결의에 찬 목소리로 “누구냐”고 묻는다. “약 타러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니까 이름과 생년월일을 대란다. 진짜 환자인지 알아보려는 것 일게다. 기분이 좀 상했지만 원 하는 데로 또박또박 불러줬다.

“타타타타 탁!” 전화기 넘어로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확인이 됐는지 많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원장님이 급한 일로 나가셨는데 들어오는 시간은 잘 모르겠단다.” 아마도 병원 휴진에 대하여 거나 아니면 지역 신문 등에서 이런저런 일로 여러 번 전화가 왔었나 보다. 하는 짐작을 할 뿐이다. 나는 30년이 넘게 그 병원을 다니고 있고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심지에 일 년에 두 번, 그러니까 설날과 추석날 빼고는 언제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분이였는데 오늘 갑자기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일로 외출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직원은 더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자기가 처방을 내려줄 수는 없으니 다음에 전화를 주시고 내방을 해달란다. 다음엔들 믿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복받치는 마음 같아서는 뭐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직원이 무슨 잘못이랴 싶어서 꾹꾹 눌러 참았다. 가뜩이나 높은 혈압 때문에 진찰하고 약을 타려고 했는데 벌컥 화를 내다가 혈압이 올라 뭔 일이라도 생기면 나만 받는 고통이지 의사는 뭐 별일 있겠는가?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쳐 주시던 분은 선생님이셨고, 공부는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은 의사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이도 어른도 있지만, 선생님이라 부르는 상대들 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신 어르신 들도 그렇게 부르셨다. 그런 호칭을 들을 수 있었던, 아니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존경의 의미이다. 내가 배웠고 내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었기에 그림자도 감히 밟지 않으려고 했고, 슈바이처처럼 허준처럼 자신을 내던지고 전대미문의 역병 앞에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고귀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밤을 낮 삼아 수고하는 의료진들의 모습에서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숭고함을 보았기에 의사 선생님인 것이다.

지난 8월 26일 부산 북구에서 A씨가 약물중독증세로 위독하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119구급대는 부산 내 대학병원등 13곳의 의료기관에 연락을 해 20여 차례에 걸쳐 문의했지만 모든 곳에서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하여 다른 곳을 찾아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27일 오후 끝내 숨졌다. 의사들의 집단 휴진이 낳은 비극이다.

이제 평범한 시민 중에 “의사”라는 직업군에 대해 막연히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이전처럼 의사 선생님의 이미지로 남기는 힘 들것이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환자가 속출하는 이 시기에 죽어가는 생명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급한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를 버려둔 채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할 수 없으며 극히 천박하고도 후안무치한 행동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문기사에 보니 우리나라 의사들은 OECD국가 중 의사들의 평균 연봉에 4.6배를 받는다 하고, 의사 명찰만 달면 한 달에 2,400만 원을 기본으로 번다고 하는데 그래도 밥그릇 때문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대들이 양보할 수 없다고 악을 써대는 의료정책 4대 악, 즉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강행” “비대면 진료 육성”은 언젠가는 추진해야 하는 국가적인 과제들이다. 그런데 그대들의 말처럼 이것이 그렇게 악법이라면 자기들이 할 일은 하면서 논의해도 되는 일 아니였나? 꼭 이렇게 저급함을 넘어 지탄 받을 모습으로 나섰어야 했는가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 의사들이 집단 이기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이 아니며, 윤리적으로 그렇게 막되먹은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격적으로도 잘 갖추어진 사람들일 것이란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세상에 있는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까지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찾아보자

우선, 가장 반발을 하고 있는 “공공의대 설립”은 지방에 공공의대를 설립해서 턱없이 부족한 지방의 의료인력을 충원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합리적이고 꼭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선발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은 누구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며 바늘 끝 만큼 이라도 의혹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현재 발표된 선발방식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의 눈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추천의 방식, 그것은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가진 계층에게 절대 유리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사회지도층에 의해서 저질러진 이 비슷한 일을 목도했고 그로 인해 우리사회는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그런데 이런 방식을 그냥 받아들이라는 건 시작도 하기전에 커다란 폭탄을 안고 가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 매커니즘이 작용했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를 촉발할 수 있다. 전남 남원에 있는 서남대학교는 의과대학이 있었다. 그런데 재단의 비리로 인해 폐교 일보 직전이다. 여기에다 공공의대를 세우겠다는 게 남원시의 큰 그림이다. 뒤이어 전남 광주시의 시장 또한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서 광주시에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정치적 매커니즘으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의 투명성이 필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의사인 당사자들을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듯이 하면서 무작정 밀어 붙여서는 아니 된다. 국민들은 코로나19로 인해서 집단 우울증에 빠져있고 무언가 분풀이나 원망의 대상이 필요한 시기이다.

하필 정부는 왜 이런 민감한 시기에 이런 예민한 문제를 발표했을까?
의사들이 반발을 크게 할 수 없을 때라서? 그렇다면 그 방법은 먹히고 있다.
여론전에서 의사들은 전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비애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더 크게 반발하는 건 아닐까? 공공의가 얼마나 필요한건지 일반시민들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이런 정책을 발표하고 그래서 의사들의 반발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사전에 정부가 의사 집단과 충분한 의견을 나누지 않은 측면이 분노한 국민을 등에 업고 억누르기식 발상이였다면 그것은 전혀 옳지 못한 방법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고 본인들의 뜻만을 관철시키려는 것에 분노할 뿐 정치 매카니즘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리고 의사들은 아무리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이다. 사람을 살리겠다고 그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로부터 하고 의사가 된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 따위는 내팽개쳐 둔 체 자신들의 주장만을 관철을 시키려 한다면 의사 선생님이 아니라 의사 놈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요즘 같은 날은 “바보의사”로 알려진 장기려 박사가 생각난다.
독실한 크리스챤인 그는 1932년 경성의학전문대학교 (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 모교에서 외과학 강사로 있다가 가난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40년 기독교 계열의 평양기흉병원 외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에 평양연합기독병원 외과과장, 평양의과대학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를 지내고 6·25 동란 때 월남했다. 그리고 피난민들로 가득찬 부산에서 복음병원을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 진료하였다. 그는 치료비가 없는 환자에게 자신의 급여를 가불하여 지불했고 치료비 대납이 어려운 경우에는 병원 뒷문을 열어 환자를 몰래 가게 하였다. 영양실조가 걸린 환자에게는 닭 두마리 살 돈을 내리는 처방을 하기도 하고, 하루는 지나가는 걸인에게 자신의 한달 월급으로 받은 수표를 주었다. 그 걸인이 수표 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불려가는 바람에 소환되어 해명을 하는 등 그에 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장 박사는 전 국민의 의료혜택을 받게 하기위해 의료보험을 도입한 의료행정가이기도 하다. 국민훈장, 막사이사이상, 인도주의 실천 의사 상을 수상한 그는 홀로 월남하여 재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마쳤으며 노년에 심한 당뇨병에 시달리면서도 백병원의 명예원장으로 집 한 칸 없이 옥탑방에서 지내면서 마지막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인술을 펼쳤던 위대한 의사 선생님이셨다.

안타깝다.
이유야 어찌 됐든지 본인들이 안 본다면서 팽개쳐버린 의사국시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엄포도 하고 때를 썼지만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때도 국민들이 의료적인 손해를 엄청 볼 것이라면서 또 국민건강을 상대로 담보를 걸었다.

의사들의 집단 파업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또 일어날 수 있다. 그때마다 안타깝게 애궂은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질 것이며, 이런 비극적인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의사들은 생명을 살리는 사람에서, 천인공노할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지혜가 필요하다. 실력행사 이전에 의료공백으로 사람이 죽어 넘어가지 않는 대책을 세워놓고 해야 할 실력행사이다.

세상에 어떤 이유로도 생명을 담보로 하는 협상을 옹호해줄 사람은 없다.

박창진 / 꿈이 있는 마을 원장,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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