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을 전후해서 몇 개 학교 가을운동회를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 60여 년 전 초등학교 재학시절의 운동회를 연상케 되고,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롭고 지난날의 가을운동회와 비교해보곤 했다.
필자가 재학하던 초등학교는 8․15 해방 수 년 전에 간이(簡易)학교 자리에서 초등학교가 설립되어 학생수가 200여 명에 불과했는데 매년 빠짐없이 가을운동회가 개최되어 학생은 물론 학부모, 지역의 인사들이 함께 모여 동네잔치를 벌리게 된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편리할 리 없고 해서 운동회 날에는 이웃 동네 사람들과 만남의 날이기 때문에 만남의 장이 학교운동장이요 만남의 날은 운동회 날이다. 그 당시는 통신수단이란 편지를 주고받아 소식을 전하고 접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정겨운 만남의 기회가 바로 운동회 날이기에 온통 그날이 오기를 너도나도 고대하게 된다.
운동회 날이 잡히면 학생들은 손꼽아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며 운동연습을 1달 전부터 연습을 하고 미리 계획대로 총연습을 하게 되는 그 날이 소운동회 날이다.
입장에는 용진문(勇進門)을, 퇴장에는 개선문(凱旋門)을 통해서 입·퇴장하게 되는데 솔가지를 꽂아서 만든 문을 미리 세우고, 만국기는 지금처럼 인쇄한 것이 아니고 물감으로 학생들이 직접 그려서 게양하게 된다. 하늘에는 만국기가 훨훨 펄럭이고 화단에는 코스모스가 한창 피어 한들한들 장관(壯觀)을 이루게 된다.
8․15이후 머리띠의 빛깔이 청․홍이던 것이 붉은 색은 공산주의 즉 빨갱이를 상징한다고 인식되어 좌우이념(左右理念) 갈등이 심각하던 때라 붉은 색을 기피해 흰색으로 대체(對替)했다. 그 후 다시 청백 모자로 바뀌었고, 지금처럼 체육복은 있을 리가 없었고 무명천에 검게 물들인 팬티에 흰줄이 양쪽 그어졌는데 여학생은 양 끝에 고무줄을 넣었던 것으로 촌스럽기가 이를 데 없는 체육복이지만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져 있는 수공(手工) 제품이다.
전교생을 청백으로 나누어 동서로 따로 자리를 해서 응원이 이어지고 3.3.7박수를 치며 목청껏 부르짖고 교사도 양편으로 나눠 승부를 가리게 된다.
경기는 개인경기 100m 달리기를 비롯해 경기가 진행되는데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기마전, 장대눕히기, 모자뺏기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씩씩한 기상과 용맹을 기르는 경기로 지금까지 전래해오니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세월이 빠름을 새삼 느끼게 되면서 감회(感懷)가 자꾸 새롭기만 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경기인 바구니 터트리기는 옛 것이 일부 학교에는 전래해오고 있는데 표어의 내용이 바뀐 것이 특이했다. 점심시간에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과 각종과일․계란․고구마․밤 등을 가족은 물론 동네사람들이 함께 죽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게 되는데 운동장 가에는 천막을 쳐 놓고 큰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퍼 돼지내장과 토란으로 국을 끓여 국밥을 팔고 있었는데 그 국을 사다가 도시락밥을 국에 말아먹던 그 맛은 별미(別味)로 당시 풍속도(風俗圖)를 연상해 보게 된다. 삶은 계란은 최상의 먹거리로 각광 받았는데 지금은 그 당시 그 맛이 나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세월 따라 입맛도 바뀌게 되나보다.
모 여중 교감 재임당시 모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장을 대신해서 축하차 주임과 동행해서 접수처에 봉투를 접수시키자 접수자는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슬쩍 확인하고 동편 교실로 안내되어 교실에 입실하자 학부모가 국밥을 주기에 막 먹으려는 순간에 학교장이 찾아와 다시 안내되어 서편 교실로 갔더니 그 곳에서는 국밥 외에 술과 안주 그리고 떡까지 차려져 있어 진수성찬(珍羞盛饌)으로 먼저 안내되었던 상차림과는 전연 다른 상차림이 아닌가. 손님에 따라서 차별 대접을 하는 것 같았는데 필자는 당시 잠바차림이기에 국밥만 대접하는 교실로 당초에 안내되지 않았는가 한다. 저녁에 내자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얻어먹지 못 한다."속언(俗言)을 인용해 가면서 일러주어서 그 다음부터 외출 시에는 정장차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그 후는 외출이나 방문 시에는 가급적 정장(正裝) 차림을 하게 되었다.
그 옛날 가을 운동 때는 운동회 본부 앞에는 협찬(協贊)이니 기부(寄附)를 하는 사람은 방명록(芳名錄)에 기록하고 창호지에다가 일금(一金)이라고 쓴 다음 액수와 주소 성명을 크게 써서 새끼줄에 죽 걸어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참여를 권유(勸誘)하게 되는데 이에 참여한 사람은 그 당시는 유지나 기관장으로 다른 사람의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었다.
그 동안 금품의 접수는 오랜 관습(慣習)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근간에도 접수처를 마련하고 방명록(芳名錄)을 준비해 놓고 금품접수를 하는 경우가 눈에 띄는데 웬만하면 이런 모금은 삼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운동회장 입구에서 접수를 하게 되니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부담이 되어 운동회 참가를 주저하게 되고 관객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교장 재임 11년 동안 각종 체육대회나 행사에서 금품접수를 한 적이 없고 인근 교장에게 수차 자제할 것을 설유(說諭)했는데 학교에서는 운동회 경비를 예산에 확보하고 교육청에서 지원을 받게 하여 학부모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하겠다. 부담 없이 운동회에 참여하는 분위기의 조성이 어떨까 한다.
가정이나 국가경제가 어려웠던 60년 전 당시는 상품이란 고작 저질의 공책과 연필이 주종이었는데 지금은 학용품의 질을 높여서 시상하게 되어 다행스럽다고 하겠다.
100m 경기는 전교생이 모두 참여하게 되는데 그 당시 재학생 가운데는 장가를 간 학생이 있는가 하면 대다수가 지금의 중․고학생 연령에 해당되어 필자가 최연소자라 꼴지를 면할 수 없어 100m 경기 참가가 싫었던 일이 기억되기도 한다.
금년에 참관한 학교에서는 3위까지 시상하고 있었는데 경기에서 입상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가 한다. 1~3등까지만 시상하지 말고 조별 참가자에게 등차별로 전원 시상하는 것도 배려해 봄도 어떨까 한다.
오늘날 부모의 과보호(過保護)와 영양의 과잉섭취(過剩攝取)로 심신이 유약(柔弱)한 학생들에게 활기차고 씩씩하게 뛸 수 있는 경기와 단합과 화합을 기할 수 있는 경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기로 유희(遊戱)나 오락(娛樂)게임을 보게 되어 퍽 안타깝기만 하다.
입장과 퇴장 시에는 발과 구호에 맞추어 뛰어서 입․퇴장하도록 하며, 경우에 따라서 행진가를 함께 부르며 율동(律動)이 유지되었으면 퍽 좋겠다.
모든 경기는 룰이 있어 꼭 지킬 수 있게 지도를 하고, 100m에서 출발과 결승을 하는 요령까지 지도해야 한다. 등수만을 가리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뛰게 하여 참가 학생이 비록 등수에 들지 않더라도 최후까지 뛰게 사전지도를 하도록 해야지 입상권 내에 들지 못하여 포기하지 않도록 각별히 지도해야 한다.
계주경기에서 배턴을 주고받는 요령과 추월(追越)하는 요령도 함께 지도해야 하는데 결과만인 승부와 등수만 가리는 것은 지도가 부족하다고 하겠다.
100m 뛰기는 학교체육에서 중요시하여 지도해야 한다. 모든 체육활동에서 가장 기초가 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기초교육의 일환(一環)으로 해서 기초를 다지는데 중점을 두고 지도해야 한다.
모 학교 운동회에서 전교사가 입장․퇴장을 함께 하고 교사들에게는 준비체조·정리체조를 학생들 대열 앞에서 함께 하고 있었는데 솔선수범(率先垂範)이 교육현장에서 교육의 성과를 결정짓는 요체(要諦)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교사들의 참여의식(參與意識)과 사제동행(師弟同行)은 교육적인 의미를 크게 부여(賦與)하기 때문에 필자는 이런 내용을 교육현장에서 강조해서 지도했다고 생각한다.
운동회는 치밀(緻密)한 계획과 준비로 경기 종목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전교직원의 관심과 학부모의 참여로 추진되어야 하며 경기내용은 충분한 검토로 능력차 내지 남녀 성별로 적정한 경기를 선정하되, 교육적인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경기에 불가피하여 불참자와 신체적으로 경기를 할 수 없는 학생에게는 특별한 관심과 배려(配慮)가 필요하고 경기에서 안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승부에만 집착(執着)하지 말고 모든 경기의 룰을 지키고 정정당당(正正堂堂)하게 운동정신을 발휘토록 해서 즐겁고 활기찬 운동회가 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