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분단
남북의 분단 문제는 먼저 그 원인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분단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나 크게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두 요인의 혼재로 분단이 가속·고착화되었다. 그러나 내적 요인보다 외적 요인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분단의 외적 요인으로는 우리나라의 독립과 관련된 협정들 즉, 테헤란 회담(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 11. 28.․1943. 12. 1.에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영국 수상 처칠, 소련 수상 스탈린의 최초의 3거두 회담), 카이로 선언Cairo Declaration: 1943년 11월 27일에 카이로에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 영국 수상 처칠,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가 모여 대일(對日) 전쟁의 수행과 전후의 일본 영토의 처분에 관하여 발표한 미·영·중 삼국의 공동 선언. 포츠담 선언의 기초가 되고, 우리나라 독립도 이 선언에서 약속됨, 얄타 협정(Yalta Agreement),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 1945년 7월 26일에 미국, 영국, 중국의 3국 대표가 일본에 대한 전쟁 종결의 조건을 발표한 선언) 등이 있다.
이들 협정에서 전승국들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이유로 우리나라에 대해 분리 점령과 신탁통치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특히 1945년 9월 2일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일반명령 제1호(General Order No.1)의 결과 한반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을 분리하여 이남은 미국이 이북은 소련이 각각 점령하였고, 그 결과 이남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대한민국이, 이북은 사회주의에 의한 인민민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남북한 상황 변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여 오던 남북한 관계는 1970년 동서 해빙 무드와 함께 관계 개선이 시작되었다.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시작으로 과거 상대 체제에 대한 불인정 논리와 무력 통일론이 분단 체제의 인정과 평화통일론으로 수정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남북 분단 관리론적 국가 운영이 1990년대에 들어와서 보다 실질적이고 개방적인 남북 관계로 진전되어, 1991년 9월 남북한 UN 동시 가입과 1991년 12월 13일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정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어 남북 관계가 실질적 측면으로 진전되었다. 그러나 국제 정세의 영향과 북한 핵문제 그리고 남북한간의 이해 대립으로 남북 관계는 대립적 측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정적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남북의 통일에 대한 의지와 환경 조성 등에 대하여 상당히 관심이 높아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