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탁상용 달력을 들고 와 1년의 경조사를 물어 왔다. 딸과 함께 1년의 경조사를 체크해 나가는데 큰딸의 생일(양력)과 친정아버지의 생일(음력)이 같은 날인 것이었다.
친정아버지께서는 지난해 예고 없이 나의 곁을 떠나셨다. 우리 가족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죽음 앞에 그 어떤 말로도 슬픔을 표현할 수 가 없었다. 건강하시지는 않으셨으나 특별히 병을 앓고 계신 것도 아니었던 터라 이렇게 갑자기 세상과의 이별을 맞이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아이들이 보고 싶은데 보내줄 수 없겠냐고 물으셨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퉁명스럽게 아이들이 약속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돌아가시기 한 시간 전에도 아버지께서는 전화로 아이들이 보고 싶은데 아이들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바쁘다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시는데도....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1시간 여만에 친정 집에 당도해서 아버지가 주무신다는 방으로 들어가서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아버지께서는 대답 없이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장례식 내내 나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렇게 보고 싶어하시는 아이들을 보내 주지 않은 죄책감 또는 그 무엇이라고 표현은 할 수 없지만 아버지가 꼭 나를 원망하고 계실 것 같고 아버지가 나를 노려보고 계시는 것 같기도 하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지 못했다. 장례식 마지막 날 어둡고 차가운 땅속에 유골을 묻고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쳐다보니 아버지께서 나를 향해 웃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장례식 내내 나를 노려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마지막에는 나에게 웃음을 보이시고 가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딸의 마음에 한을 남기지 않으시려고 그러신 것 같다. 이런 준비 없는 이별은 누구에게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사전에 준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족의 소중함을 가슴 가득 남겨 놓았고 비록 준비 없는 이별로 나와 헤어져서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딸아이와 생일이 같은 것을 보니 아버지는 나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서 나를 지켜주실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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