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건물의 간판이 슬쩍 서울동부지방공소청으로 바뀌었다. 공소청 공식 출범은 10월 2일부터다. 동부는 간판부터 바꿔 달았다. 의정부지검도 곧 바꿔 달 텐데, 공식 현판식 계획은 없는 듯하고, 대검과 중앙도 없다.
전국 검찰청 간판 교체 일정과 공소청 현판식 일정을 언론에 알리는 게 어떨까? 그게 명쾌하다.
동부지검과는 인연이 남아 있다. 1990년 동부지청 시절일 때 4개월간 검사시보를 했다. 그때까지 고향마을 강동에서는 동부를 성동지청이라고 불렀다. 당초 1972년 서울지방검찰청 성동지청으로 개청되었기 때문이다. 남부지검은 영등포지청, 북부지검은 성북지청이던 시절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성동구는 지금의 성동구와 광진, 강남, 서초, 송파, 강동을 다 안고 있었다.
그 후 70년대 말, 한강 이남 대개발로 강남구, 강동구가 성동구에서 분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1981년 성동지청의 명칭은 서울동부지청으로 변경되었다. 영등포지청은 남부, 성북지청은 북부가 되었고, 서부지청은 나중에 생겼다.
1989년 서울지검 본청이 서소문에서 서초법조타운의 지금 자리로 이전하자, 동부지청 관할인 강남구, 서초구가 본청 관할로 옮겨졌다. 2004년에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으로 승격되었다. 동부, 남부, 북부, 서부, 의정부와 함께 였다.
평검사 시절, 성내동 집 가까운 연고지 동부지청 근무를 지망했지만, 한 끗 차이로 서부지청 발령이 나기도 했다. 그땐 혹 상피근무제, 그런 비슷한 게 있었을지 모르겠다. 결국 4개월 검사 직무대리 인연이 다였다. 그럼에도 동부는 고향 친정집 같다.
서울동부지검은 2017년 3월에 오랜 터전인 구의동 청사를 떠나 지금의 송파 문정동 신청사로 이전했다. 문정동 시절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오늘은 마침 그 청사에 공소청 간판이 새롭게 올라갔다. 78년 된 검찰청이 폐지되는 것이다. 역사는 흐르는가?
동부지청이 고향 친정집 같은 곳이라면, 의정부지검은 부장검사로 일했고 지금도 매일 그 앞을 지나는 곳이다. 그곳으로 가는 출근길에는 도봉산이 있다.
경기북부 의정부로 들어가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의 불암산터널, 수락산터널은 길다. 한참 달려야 빠져나온다. 터널을 나오는 순간 도봉산이 차량 앞유리를 가득 채운다. 하늘을 향해 큰 바위 덩어리들이 솟아 있다. 도봉의 최고봉 자운봉(해발 739.5m)과 나란한 만장봉, 선인봉이 우뚝하다. 옆자리 사패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다.
매일 아침, 그 길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의정부 사무실로 온다. 출근길 머릿속은 그날 할 일로 가득하다. 재판과 접견, 서면이 기다린다. 차 안의 잡생각이 도봉을 보면 끊긴다. 2009년 검사로 의정부지검에 왔을 때도 도봉은 그 자리였다. 지금은 재야법조 변호사로 같은 길을 오간다. 하는 일과 앉는 자리는 바뀌었어도 도봉은 여전하다.
도봉산은 한자로 道峯山이다. 길 도 자를 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경기북부를 지나 한강변 파주 장명산까지 이어지는 한북정맥 줄기에 있다. 한양 북쪽을 지키던 산이기도 하다.
수백 년 전, 경기북부나 강원, 함경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던 사람들은 도봉을 보며 길을 셈했을 것이다. 자운봉이 보이면 지금도 의정부 호원IC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길잡이 산이다.
가장 높은 자운봉은 '자줏빛 구름'이라는 뜻이다. 오후 늦은 귀로, 해가 산 너머에 걸릴 때면 자운봉 이름을 실감한다. 노을이 바위에 번지면 산봉우리 끝에는 붉은 기운이 도는 구름이 걸린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산 이름을 지은 사람도 같은 걸 보았을 듯하다.
자운봉, 선인봉, 만장봉 윗자락은 때때로 구름에 잠긴다. 오늘 출근길에도 아침 햇살을 받은 선인봉 암벽에 흰 구름이 걸려 있다. 봉우리를 감싼 구름을 보면, 오늘처럼 쌀쌀해진 가을날 온몸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겉옷 같은 기분이 든다. 구름을 보며 얼른 깜빡이를 켜고 호원IC로 빠져나온다. 의정부지방검찰청 정문을 지나면 바로 그 앞이 변호사 사무실이다.
검사로, 변호사로 자운봉을 바라보면서 길을 다녔다. 그 사이 어느 틈에 형사사법의 길이 바뀌었다. 10월 2일이면 검찰청 간판이 내려가고 공소청 간판이 걸린다. 의정부지방검찰청 대신 의정부지방공소청이 되는 것이다.
범죄수사는 중수청과 경찰이 맡고, 공소청에는 기소와 공소 유지가 남는다. 수사는 속도가 붙으면 멈추지 않는다. 범인을 잡으려는 마음이 증거보다 앞서가는 일이 흔히 생긴다. 한 걸음 떨어져서 기록을 법률가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앞으로 공소청 검사가 할 일이다. 불기소도 그 일에 들어간다.
증거가 모자란 사건을 법정에 올리면, 무죄가 나오기까지 고통이 뒤따른다. 피고인 옆자리에 앉아 보면 기소의 무게를 알게 된다. 기소했으면 책임 있게 가야 한다. 공소청 검사는 수사하지 않은 사건을 들고 법정에 선다. 그럴수록 기록을 파야 한다. 공소청 검사가 흔들리면 범죄 피해자는 의지할 데가 없어진다.
아침 출근길, 도봉산을 본다. 의정부 호원IC를 놓쳐서 길을 잃게 될 걱정은 없다. 자운봉이 길잡이로 우뚝하다. 공소청이 그런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 이임성 변호사 / 포천신문 논설위원, 현)법조윤리협의회 회장 , 전)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회장, 전)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