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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찬억] 꽃과 문화

여름날 피어나는 겨레의 얼, 무궁화(無窮花)를 생각하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9월 28일
 
< ​박찬억 / 포천문화원장 >
 
 유난히 가혹하고 뜨거웠던 올여름의 열기가 스쳐 지난 자리, 마을 어귀나 공원 한켠을 가만히 서성이다 보면 어김없이 피어나 정갈하게 인사를 건네는 꽃이 있습니다.

푹푹 빠지는 무더위 속에서도 단 한 순간도 기품을 잃지 않고 마디마디 굳건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나라꽃 ‘무궁화(無窮花)’입니다.

계절의 길목에서 한여름을 당당히 이겨내고 피어난 무궁화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슴 깊이 다져야 할 문화적 소명과 마음가짐을 반추해 봅니다.

무궁화는 단순히 한 계절을 장식하는 식물을 넘어, 수천 년 우리 민족의 역사와 숨결을 함께해 온 거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동양의 오랜 고전인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우리 땅을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훈화는 무궁화의 옛 이름)가 있어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예로부터 무궁화는 인내와 도의를 숭상하던 우리 겨레의 성품을 대변하며 이 땅의 산하를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특히 국권을 빼앗겼던 어두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게 무궁화는 단연 자주독립에 대한 절절한 결의이자 꺾이지 않는 민족의 얼 그 자체였습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1921년 만해 한용운 선생은 차디찬 옥중에서 시 <무궁화 심고자>를 통해 일제를 몰아내고 빼앗긴 조국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노래했습니다. 박두진 시인의 웅혼한 시구와 국민가요 <꽃중의 꽃> 역시 시련을 이겨내고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피어난 무궁화의 숭고한 가치를 칭송해 마지않았습니다.

무궁화의 생김새와 구조 하나하나에도 묵직한 문화적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겹겹이 다듬어진 순백의 꽃잎은 예로부터 화려함보다 정결함을 추구했던 순박하고 청정무구한 민족의 심성을 보여줍니다. 꽃 중심부에 자리한 진홍빛 화심(火心)은 나라와 겨레를 향한 뜨거운 애국심과 지속 가능한 번영의 뜨거운 열망을 상징합니다.

세계적으로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 불리며 찬사를 받는 무궁화는 현재 국내에만 256종이 넘는 다양한 품종이 전해지며, 겉 모습과 색상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 등으로 나뉘어 그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무궁화가 지닌 가장 뛰어난 미덕은 단연 ‘끝없는 생명력’입니다.

무궁화는 한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백여 일 동안 매일 수천 송이의 새로운 꽃을 피워냅니다. 새벽에 피어나 청초한 자태를 자랑하다가 저녁이 되면 스스로 꽃잎을 말아 쥐고 겸허히 떨어지지만, 다음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봉오리가 또다시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피고 지기를 거듭하면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멈추지 않는 이 무궁(無窮)의 순환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피로감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생명의 에너지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꽃 한 송이에도 그 지역과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이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흩어지면 약해지고 뭉치면 강해지는 무궁화의 일편단심과 정열을 되새기며, 우리 모두가 일상의 피로를 털어내고 서로를 보듬는 화합의 길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무궁화가 수없이 피어나듯, 우리 고장과 지역 사회의 문화적 번영 역시 끊임없이 피어나 더욱 찬란하게 결실 맺기를 기대해 봅니다.

< ​박찬억 / 포천문화원장 >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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