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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성의 칼럼] 월드컵결승과 검수완박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7월 21일
 
<이임성/포천신문 논설위원>
 
[시론] 무적함대의 압박과 침몰하는 강국: 월드컵 결승으로 본 ‘검수완박’의 관전평
​초록색 잔디 위에서 펼쳐진 월드컵 결승전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두 조직이 수십 년간 쌓아온 저력과 한 시대의 패러다임이 격돌한 ‘권력의 축소판’이었다.

​필드 위를 종횡무진 누비는 스페인은 압도적이었다. 수비수들은 거대하고 빠르며,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순혈주의를 넘어 식민지 출신까지 포용성 있게 아우른 10명의 하이브리드 필드 전사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상대의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아르헨티나를 무한 압박하는 그들의 플레이에서는 지난 16년간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이 뿜어내는 독기가 느껴졌다. 조선이 임진왜란의 참화에 시달리던 수백 년 전, 이미 지구 최강의 무적함대를 앞세워 대륙과 해양을 호령했던 그들의 정복 DNA가 어디 도망갔을 리 만무하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축구만’ 강국일 뿐, 시스템은 붕괴해 있었다. 전후반 내내 허둥지둥 대며 전술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전방 공격수는 상대 수비수 한 명을 제치지 못해 먼저 성질을 부렸고, 에이스 메시가 스페인의 유기적인 수비 그물망에 질식당하자 필드에는 사실상 9명만 뛰는 고립 상태가 지속되었다. 다양성을 잃은 백인 일색의 스페셜리스트들은 체력 한계를 드러냈고, 막판 퇴장 악재까지 겹치며 연장전 끝에 당연한 패배를 맞이했다. 과분한 행운처럼 느껴졌던 4년 전 카타르에서의 우승이, 그들에게는 보약이 아니라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 감미로운 독(毒)이었던 셈이다.

​물밑의 40년 빌드업, 무적함대가 된 13만 경찰
​그라운드 위의 승패는 놀랍게도 지금 대한민국 사법 벌판에서 벌어지는 검찰과 경찰의 거대한 지각변동,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검찰청 폐지 국면을 고스란히 비춘다.

​경찰은 지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저히 은인자중(隱忍自重)해 왔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전두환의 친형이 경찰 고위직에 있다는 이유로 찾아왔던 최초의 수사권 독립 기회는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낙담하는 대신 절치부심(切齒腐心)을 택했다.

​행정안전부라는 외피와 별도로 독자 배정된 13만 명의 거대 조직과 15조 원에 달하는 막강한 예산이 물밑에서 정교하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랜 기간 학계의 교수들, 시민단체, 정치권을 폭넓게 섭섭지 않게 지원하며 학회와 포럼, 자문위원회라는 견고한 여론의 방어벽을 구축했다.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전진한 결과는 눈부시다. 이제 경찰은 본래의 목적인 범죄 예방을 넘어 정보, 보안, 그리고 사법수사권까지 한 손에 쥔 무소불위(無所不爲)이자 능소능대(能小能大)한 무적함대가 되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자유당, 유신, 군사정부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최정점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조직적 기억과 노하우가 허공에 흩어질 리 없다는 것을 그들은 증명해 냈다.

​여론전의 패배, 벼랑 끝에 선 2,000명 검찰
​반면 검찰의 현실은 무기력하게 침몰한 아르헨티나와 닮아있다. 검사는 본래 수사와 기소, 그리고 사법 통제를 위한 수사지휘 전문 조직이다. 그러나 규모 면에서 경찰의 1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조직이다 보니, 현대 권력 투쟁의 핵심인 SNS 여론전과 프레임 대결에서 원천적으로 뒤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예산과 인원을 법무부로부터 일일이 허가받아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경찰처럼 학계나 법조 주변부에 인심을 쓰며 우군을 확보할 기회조차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조직의 수장은 공석이고,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검찰청 폐지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 조직의 상징성은 급격히 힘이 빠졌다. 최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밀려나거나, 미래를 잃은 젊은 엘리트 검사들이 대거 옷을 벗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현직에 남은 2,000여 명의 검사들은 당장 자기 책상 위에 쌓인 당면 과제에 치여 주변과 밖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최근 광산경찰서의 강간살인 암장 시도 사건 같은 경찰의 거대화 부작용이 현안으로 터져 나와도, 검사들은 시스템의 붕괴 앞에 그저 묵묵히 제 자리만 지킬 뿐이다.

​자업자득의 대가, 그리고 사라진 사법 통제
​그간 권력 교체기마다 검찰 조직 전체가 총동원되어 정치권과 벌였던 치열한 ‘죽음의 리그전’이 외려 독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과거 일부 정치검사들이 보여준 무도하고 칼춤 추듯 한 일탈이 불러온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인가.

​이유가 무엇이든 본질은 왜곡되었다. 근대 형사사법 제도의 핵심이자 헌법과 법률이 보장했던 검사의 핵심 기능—보완수사, 수사지휘, 전건송치 통제, 그리고 이를 통한 궁극적인 피해자 구제—이라는 사법 통제 메커니즘 자체가 ‘검찰 개혁’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통째로 부정당할 판이다.

​에이스 한 명의 개인기에 의존하다 거대한 조직력 앞에 질식당한 아르헨티나처럼, 검찰 역시 거대해진 경찰이라는 무적함대의 압박 수비에 막혀 필드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견제와 균형이 깨진 경기장, 사법 통제의 브레이크가 파괴된 이 싸움의 승부는 이미 뻔해 보인다. 링 밖에서 씁쓸하게 담배 연기를 뱉으며 이 파국을 바라보는 로컬 중늘그니 변호사의 눈에 비친, 잔인하도록 차가운 관전평이다.

< 이임성 변호사 / 포천신문 논설위원, 현)법조윤리협의회 회장 , 전)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회장, 전)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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