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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만의 왕릉 이야기⑨ - 희릉] 장경왕후 윤씨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7월 06일
 
< 강경만/ 공인노무사 >
 
1. 희릉 답사를 시작하며 (답사일 : 26. 6. 28)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작은 걸음 큰 울림 왕릉답사 오늘은 서삼릉에 있는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능호가 같은 고려의 <희릉>은 공교롭게도 의종과 그 왕비 장경왕후가 묻혀 있는 무덤이다.

2. 장경왕후는 누구인가?

희릉의 주인 장경왕후는 중종의 후궁으로 시작해서 1507년 그의 계비가 되었다. 중종이 1506년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지 7일 만에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정치적인 이유로 폐위되었기 때문이었다.

장경왕후가 중전에 오른 것에는 그녀가 반정공신 박원종의 외조카였던 이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내명부를 이끌던 장경왕후는 이후 인종으로 즉위하는 왕자를 낳고 산후병에 걸려 7일 후인 1515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장경왕후의 능은 처음에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다가, 1537년(중종 32) 장지에 문제가 있다는 권신 김안로의 주장에 따라 천장되었다. 참고로 이때 김안로는 정광필을 비롯해 희릉 조성에 관여했던 정적들에게 후궁 경빈 박씨를 비호했다는 혐의를 씌워 제거하려는 속셈에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었다.

이유가 어떠했든 서삼릉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희릉은 중종이 사망하자 동원이강릉의 형태로 그의 능까지 함께 조성되었다. 하지만 장경왕후와 중종이 함께 묻힌 세월은 20여년도 가지 못했다.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가 자신이 중종의 무덤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능을 다른 곳으로 이장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장경왕후의 희릉은 지금까지 다소 외롭게 홀로 서 있는 모습이다. 여러모로 정치적인 이유로 많이 이용된 능인 것 같다.
* 출처 : 두산백과

3. 희릉 안내표지판
 
희릉은 조선 제 11대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장경왕후는 1506년 중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1507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 사이에 1남 1녀를 낳았으며 1515년 인종을 낳은 후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희릉은 처음은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으나 중종 32년(1537년)에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1544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희릉 옆 언덕에 중종의 능이 조성되어 정릉이 되었다가, 1562년 중종의 능이 아버지 선릉의 동쪽으로 옮겨지자 지금의 희릉만 남게 되었다. 희릉의 특징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을 둘렀지만 호방한 기세의 무인석과 문인석이 섬세하게

4. 아들 인종과 효릉

아들이 조선 제12대 임금 인종, 1545년 인종이 세상을 떠나자 당시에는 아버지 중종의 정릉이 있던 곳의 서쪽에 조성되었다. 이때 미리 왕비 인성왕후의 자리를 준비해 놓았으며, 시간이 지난 1577년(선조 10) 인성왕후가 사망하자 쌍릉이 되었다.

인종은 장경왕후와 중종 사이의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장경왕후가 사망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궁궐 내의 입지가 다소 취약했다. 복성군의 어머니 경빈 박씨, 경원대군의 어머니 문정왕후 등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로 세우려는 야심을 품고 세자 인종을 위협한 것이다.
 
그러나 온화하고 효성 깊은 성품을 가지고 있던 인종은 경빈이 사형당할 때 복성군을 구해줄 것을 간청하거나, 새어머니 문정왕후와 이복동생 경원대군(후의 명종)을 효도와 우애로 대하는 등 여러 미덕을 보여주었다. 

겨우 위기를 넘기고 1544년 왕위에 오른 인종은 안타깝게도 이 성품이 원인이 되어 8개월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아버지 중종의 죽음에 크게 슬퍼해 고기도 입에 대지 않고 힘든 삼년상을 이행하다가 건강을 해쳤기 때문이다. 야사에서는 문정왕후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설이 전해지나 근거는 없다고 한다.

5. 희릉 답사를 마치며
 
조선 중종반정 이후 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 경빈 박씨 희빈 홍씨, 동작릉 안씨 등과 함께 여인천하의 한 축을 담당하며, 대윤과 소윤의 역사를 우리 역사서에 남긴 장경왕후 윤씨, 아들의 왕위 등극도 보지 못하고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사망한 비운의 왕후, 오늘날 까지도 그가 잠들어 있는 희릉과 아들이 있는 효릉 은 젖소목장 으로 가로 막혀 혼유할 수 없는 왕릉이다.

남편 중종이 묻히기를 원했던 중종의 정릉이 있던 자리에는 훗날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인 예릉이 조성되었다. 외척정치로 저물어가던 조선 중기의 역사를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2026. 6. 28.
 
강경만/ (한솔노무사사무소 대표/포천신문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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