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속담에 보면 "내일과 다음 生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요. 6월의 푸르름이 짙어질 대로 짙어진 마지막 일요일,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경기 안산의 대부도 북단에 자리한 구봉도로 향했습니다. 오늘 여정의 동행은 피를 나눈 친동기간보다도 더 끈끈하고 살가운 호남향우회 포천지회 회원들입니다. 천리타향 포천에서 만나 오랜 세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 이들과 함께하는 길이니, 출발하기 전부터 마음은 이미 싱그러운 서해의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구봉도 주차장에 도착해 해솔길 2코스를 걸었습니다. '구봉도(九峰島)'라는 이름처럼 아홉 개의 봉우리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트레킹은 초여름의 햇살을 받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습니다. 숲길을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서걱거리는 흙소리와 은은하게 퍼지는 솔향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씻어내렸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건네는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와 한바탕 터지는 웃음소리에 숲길은 금세 활기로 가득 찼습니다.
숲길을 벗어나 해안선과 맞닿은 도보길에 들어서자, 구봉도의 명물인 할매바위와 할아비바위 (구봉이 선돌)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바다를 향해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에는 애틋한 지역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부부의 기다림, 선돌이 되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구봉도(九峰島) 에 금실이 아주 좋은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해, 할아버지는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갔으나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할머니는 매일같이 구봉도 앞바다 갯바위에 올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할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이 수년째 이어지던 어느 날, 할머니는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돌(할매바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할아버지는 돌이 된 할머니를 보고 통곡하며 슬퍼하다가, 결국 자신 또한 그 곁에서 함께 돌(할아비바위)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도 두 바위는 밀물이 되면 바다 위에 고고하게 떠 있고, 썰물이 되면 갯벌을 드러내며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견뎌온 노부부처럼 서해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향우회 회원들의 모습을 가만히 둘러보았습니다. 젊은 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과 정으로 오늘날까지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온 우리의 삶도 저 굳건한 선돌의 모습과 닮아있는 듯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습니다.
선돌을 지나 구봉도 낙조전망대로 이어지는 개미허리 아치교를 건너 만조 때가 되면 물이 차올라 섬의 연결부가 개미허리처럼 잘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의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서해의 푸른 바다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낙조전망대에는 '석양을 가슴에 담다'라는 거대한 링 모양의 조형물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한낮의 여정이라 붉게 타오르는 서해의 낙조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조형물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습니다.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회원들과 함께 조형물을 배경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들은 영락없는 고향의 형제자매들 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잔잔한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이번 여정을 되짚어봅니다. 6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함께한 구봉도 해솔길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을 넘어, 동기간 같은 향우회 회원들과의 정을 더욱 두텁게 다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할매·할아비바위의 전설처럼, 우리 호남향우회 포천지회도 모진 세월 속에서 변치 않는 든든한 동반자로 언제나 제2의 고향인 포천 땅에서 함께 빛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