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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만/ 공인노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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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릉 답사를 시작하며 (답사일 : 2026. 6. 27)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작은 걸음 큰 울림 왕릉답사, 오늘은 중종의 세번째 왕비로 여왕폐하를 꿈꾸며 조선 중기 외척정치 시작을 예고하고, 아들 명종과 남편 중종을 허수아비로 만든 문정왕후 윤씨의 태릉입니다.
2. 문정왕후는 누구인가?
문정왕후는 파평윤씨 윤지임의 딸로 중종의 첫 왕비 장경왕후 윤씨 사망이후 왕비에 책봉되어 세자 인종을 키우고 왕이 되는데 공헌하였으나, 인종의 갑작스런 병사로 자기가 낳은 경원대군이 12세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령청정을 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여후다.
특히 동생 윤원형, 오빠 윤원로에게 정권을 쥐게 하고 인종의 외척 윤임 일파가 중종의 6남 봉성군에게 왕위를 승계하고 성종의 3남 계성군을 옹립했다는 소문을 퍼트려 이를 구실 삼아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을 죽이고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이를 을사년에 소윤 윤원형 일파가 대윤 윤임 일파를 제거하는 "을사사화"로 불리고 있다.
또한, 권력을 잡은 윤원형은 애첩 정난정과 공모하여 눈엣가시인 형 윤원노는 물론 윤임과 사돈관계에 있는 이약수, 자신의 탄핵을 주장한 송인수 등을 제거하기 위해 지금의 서초구 양재역에 "양재역 벽서 사건"을 기획하고, '위로는 여왕 문정왕후, 아래로는 간신 이기가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곧 망할 징조다' 라는 익명의 벽서를 만들어 정난정을 통해 문정왕후에게 보고하여 정적들을 무고하게 제거한 정치기획 사건이다. 참, 가지 가지 했네, 태진아 왈, 정치는 아무나 하나! 이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양주의 백정 출신 '임꺽정'이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3. 태릉 안내표지판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능이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 능 자리를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 (신정릉(新靖陵))으로 정하였으나 명종의 반대로 현재의 자리를 문정왕후의 능 자리로 정하고 능의 이름을 태릉이라 하였다.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 중종과 같이 묻히기를 원하여, 당시 봉은사의 주지인 <보우>와 의논하여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옆에 있던 중종의 능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옮긴 정릉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명종은 어머니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정하게 되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선릉·정릉과 마찬가지로 태릉과 강릉에도 왜적들에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태릉은 『국조오례의』의 예에 따라 조성되어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을 새겼고,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겼다.
원래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긴 것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조성할 때만 적용되었는데, 태릉을 시작으로 십이지신상과 문자를 함께 새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능침 문석인과 무석인, 장명등 등 석물은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크게 세웠는데 이는 조선 중기의 양식이다. 특히 문석인과 무석인의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능침 아래의 정자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4. 태릉능침답사
태릉 능침 처음 답사 왕릉 보다 크고 웅장 태평 성대 영원 불멸 뒤는 불암 앞은 중랑 풍수 길지 선택 안도 후손 대가 끊길 음택 절손 사장 부른 이유 가서 보면 알게 되니 태릉 웅장 강릉 쓸쓸
살아 생전 여인 천하 동생 통해 외척 정치 사화 단행 언로 차단 보우 등용 국정 문란 사후 시호 문정 왕후 중종 곁에 있고 싶어 왕릉 천장 따로 장지 정릉 태릉 희릉 온릉
5. 태릉 답사를 마치며
중종의 여인들 중 가장 강한 여걸 문정왕후와 역사의 흔적이 살아있는 불암산 자락 태릉, 태평성대 속에서 편안히 영면 하기를 바라는 뜻이 겠으나, 육사와 태릉선수촌 그리고 서울여대와 삼육대로 둘러쌓여 영면과 어긋난 시끄러운 왕릉이나 불암산 품은 태릉은 풍수명당, 지금도 답사객 왕래 끊이질 않고 TV사극 단골손님 자리매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되새기며, 한 여름의 이열치열 태릉답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6. 6. 27.
강경만/ (한솔노무사사무소 대표/포천신문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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