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원주민들에게는 오랜 세월 내려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묘한 곰 사냥법이 있다고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커다란 돌덩이에 달콤한 꿀을 듬뿍 바른 뒤, 단단한 나뭇가지에 밧줄로 매달아 놓는 것이 전부입니다.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다가온 곰은 그것을 횡재라 생각하고 덥석 잡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돌덩이를 건드리게 되고, 매달려 있던 돌덩이는 시계추 처럼 허공을 가르며 곰의 머리를 때립니다. 불시에 일격을 당한 곰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게 감히 나를 때려? 본때를 보여주마!’ 하며 더 큰 힘으로 돌덩이를 후려칩니다.
하지만 곰이 돌덩이를 세게 때리면 때릴수록, 돌덩이는 정확히 그만큼의 더 큰 반동과 무게로 돌아와 곰을 받아버립니다. 곰은 이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오직 눈앞의 상대를 꺾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겠다는 일념으로 분노를 증폭시킵니다. 마침내 피투성이가 되어 나가떨어질 때까지, 자신을 때리고 있는 그 강력한 펀치가, 결국 자기 자신이 휘두른 분노의 크기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미련한 곰의 이야기는 단순히 곰의 일화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복잡하고 거친 ‘세상사’의 거울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 삶의 도처에서 꿀 바른 돌덩이를 만납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시기심일 수도 있고, 내 뜻대로 상황을 통제하려는 과한 욕심일 수도 있으며,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자존심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분노라는 발길질을 시작합니다.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어디 한번 당해봐라."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던진 말과 행동은, 이내 세상이라는 밧줄을 타고 더 큰 날카로움이 되어 내 가슴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눈이 멀어 더 강한 분노를 쏟아붓습니다. 가만히 멈춰 서서 선후관계를 따져보거나 밧줄을 끊어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그저 '저 돌덩이를 부수겠다'며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드는 진흙탕 싸움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이 사회의 수많은 갈등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분노의 반동'에 부딪혀 스스로 멍들고 있습니까.
곰이 그 무서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저 욕망을 내려놓고 돌덩이를 때리던 손을 멈춘 채, 가만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멈추면, 나를 위협하며 매섭게 날아오던 돌덩이도 이내 허공에서 중심을 잡고 고요하게 멈추어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옛 현인들은 '나를 이기는 것이 진정한 강함 자승자강(自勝者强)'이라고 하며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의 넉넉함을 강조했습니다. 삶이 나를 향해 거친 주먹을 날린다고 느껴질 때,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손을 먼저 들여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내가 먼저 세상이라는 돌덩이를 향해 분노의 주먹을 내뻗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나를 치는 분노의 부메랑을 멈추는 힘은 결국 내 안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꿀 바른 돌덩이를 향해 치켜들었던 주먹을 슬며시 내려놓고, 따뜻한 응시로 스스로를 돌보는 평온한 일상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