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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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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끝난 다음날 6.4일 가끔 찾는 성북동의 길상사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소유의 집착 속에 자신을 가두곤 합니다.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쥐려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근현대사 가장 아름다운 ‘무소유의 미학’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떠난 한 여인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시인 백석의 영원한 연인이자 성북동 길상사의 창건주, 법명 길상화(吉祥華)인 김영한(1916~1999) 여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집안이 어려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16세에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어야 했던 그녀. 당대 최고의 가무 스승이었던 하규일 선생은 거친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결함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맑은 물은 잡스런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는 (眞水無香)구절에서 따온 진향(眞香)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1936년 함흥에서 운명처럼 당대 최고의 천재 시인 백석을 만나며, 그녀의 인생은 한 편의 거대한 문학이 되었습니다.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주었고, 눈 내리는 밤이면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꿈꾸며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시대의 비극과 분단이 그들을 갈라놓았지만, 자야에게 백석은 평생을 지탱한 유일한 사랑이자 삶의 등불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서울 성북동에 대형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며 엄청난 재력을 쌓았으나, 세속의 거대한 부 앞에서도 그녀의 영혼은 언제나 ‘진향’이라는 이름처럼 맑고 정결했습니다.
결국 자야(子夜)의 눈물은 길상화로 활짝 피어 났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던 이름 뒤로 차디찬 세월의 눈보라 홀로 맞으며 여인은 가슴속에 시 한 줄을 품었습니다. 천만금 황금 벽이 높다 한들 눈 내리는 밤, 나귀 타고 오마던 남편의 다정한 숨결 하나만 하겠느냐는 것이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대원각 세속의 붉은 등 하나둘 꺼질 때마다 무소유의 맑은 바람 문을 두드리니 천억의 집착은 바람결에 흩어지고 그 자리에 맑고 향기로운 도량 피어나습니다.
"내가 평생 모은 돈,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마지막 남은 육신마저 눈 위로 날려 보낸 날 여인은 비로소 가벼운 새가 되어 사랑하는 이의 품으로 날아올랐습니다.
1987년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그녀는 싯가 1,000억 원에 달하는 대원각 부지 7,000여 평을 아무런 조건 없이 시주했습니다. 요정 정치의 중심지 대원각요정이 ‘맑고 향기로운 사찰’ 길상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번 돈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던 그녀의 나지막한 일갈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이기심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죽비와도 같습니다.
1999년 겨울, 세상을 떠나기 전날 목욕재계하고 길상사를 찾아 참배했던 그녀는 유언대로 화장되어 눈이 많이 내리던 날 길상사 도량에 뿌려졌습니다. 흔적도 없이 떠나는 진정한 무소유의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어디 삶과 사랑을 이토록 아름답게 완성한 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 오히려 마음이 가난해지는 오늘날, 성북동 길상사의 숲길을 걸으며 여인이 남기고 간 ‘참된 향기(眞香)’와 고결한 보시의 의미를 다시금 마음 깊이 되새겨 위로를 얻습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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