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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석 / 대한노인회 포천시 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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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조대왕은 1335년 10월 27일(음 10월 11일) 함경도 영흥에서 출생하고 함흥에서 성장하셨다. 태조는 포천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실록을 보면 요동으로 출정하기 전에 신의왕후 한씨는 해룡산 아래 재벽동에, 신덕왕후 강씨는 가산면 궁말 철현에서 전장을 운영하며 군량미 조달 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신의왕후 한씨가 운영하는 전장은 지금의 용정산업단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며, 강씨가 운영하던 전장은 금현리 벌판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자작리와 6군단 사이의 농지는 대장의 터라는 별칭이 있으니 이태조가 임금이 되기 전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강무장으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수원산 아래에서 군내면 앞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옛 명칭은 위성계 하천으로 불렸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지금도 있으니 이성계 하천이 변형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 문헌에 의하면 두 분 왕후는 4년 정도 포천에 머무르시다가 신의왕후 한씨는 이태조가 왕위에 등극하기 전 돌아가시어 함흥에 묻히시고, 강비가 왕후가 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조선왕조실록 중 태종실록이나 세종실록에 의하면 대왕들이 포천에 거동한 횟수를 보면 태종대왕은 5회, 세종대왕은 35회, 세조대왕은 6회, 성종대왕은 5회, 정조대왕은 1회 정도이다. 특히 세종대왕은 재위 31년 6개월 동안 거의 매년 왔다고 볼 수 있으니 이는 지금 대통령 5년 임기 중 한 두번 오기도 어려운 것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한다.
임금이 포천에 내왕한 이유는 강무와 사냥이다. 강무는 병사훈련이고 사냥은 임금의 체력단련이라고 볼 수 있다. 강무는 굴동과 매장원이라고 하는데, 이 장소는 지금의 영평 미군 훈련장으로 추정된다. 옛날 강무장이 지금의 훈련장이라고 생각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냥터는 해룡산, 왕방산, 주금산, 보장산, 등에서 하며 임금이 출동할 때 수행원이 1,000명에서 2,000명 정도라고 하며, 당시 포천현의 인구가 371호에 1,222명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가 가늠해 볼 수 있다.
3.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포천을 제4성지로 분류한다. 제1성지는 전주의 시조의 묘가 있는 조경단이고, 제2성지는 태조의 5대조인 이양무 장군의 묘가 있는 삼척의 준경묘, 제3성지는 조선의 종묘가 있는 서울이다. 그 다음 제4성지로 태조가 잠저시절 활동한 재벽동과 철현마을이 현존하는 포천이다.
이태조가 잠저시절을 보낸 이 포천에 잠저비를 세우기 위하여 대동 종약원과 경기도지원 포천시분원에서 몇 년간 노력하여 설계까지 완료하고 장소까지 물색하였으나 장소가 확정되지 못하고 예산 지원에 어려움으로 중단된 상태이나 다시 추진하여 전국의 전주 이씨들이 찾아와서 참배도 하고 포천 관광도 하고 하는 사업으로 추진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며 전주 이씨들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4. 2016년에 개최하였던 조선건국의 태동 포천과 태조 이성계의 세미나 개최편에 보면 함흥차사 재현축제 이야기가 있다. 태조대왕이 제1차 왕좌의 난 등을 겪으며 왕위를 정종대왕에게 물려주고 함흥에 계신 것을 태종대왕이 상왕을 모셔오기 위하여 여러 사람을 보냈으나 다 돌아오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마지막으로 관중추 부사 박순이 자청하여 찾아가서 설득하여 서울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였으나 부하들이 극력으로 그를 죽이자고 설득하니 이태조께서 용흥강을 건너갔으면 살려주고 못 건너갔으면 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박순은 병이 나서 중간에 체류하다가 강을 건너지 못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나 태조께서는 박순은 참 좋은 친구라고 말씀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어 서울에 돌아오기로 결정하였다. 세미나에서는 이러한 함흥차사 편을 포천시가 축제로 활용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안이 있다. 본인도 적극동의를 하면서 이웃 양주시에서는 해마다 회암사에서 “태조대왕 회암사에 납시다”라는 축제로 거의 10만 명 정도가 다녀 간다고 한다. 본인도 2번 정도 가보면서 함흥차사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포천시도 한 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5. 몇 년전 성균관대 정승진 교수와 함께 포천의 역사 문화와 도로에 관하여 연구하고 이태조에 대한 자료 채취 등을 하고 정승진 교수가 <포천의 농촌 유산과 에코뮤지엄>이라는 책을 발간한 적이 있다. 이 책에 경흥대로와 조선시대의 도로망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의 한양을 중심으로 6-10개의 간선로 중 함경북도 경흥에 이르는 경흥대로는 제2로로서 약 2,500리의 가장 긴 길이다. 제1로는 서울에서 의주를 향하는 의주대로로서 중국의 사신들이 주로 오가는 도로이고, 제2로인 경흥대로가 도성에서 출발해 양주・포천과 영평을 거쳐 철원・김화・길주・경원・경흥까지 총 29개의 군현을 경유한다.
지금의 43번 국도가 경흥대로로서 지금은 남・북이 분단되어 있으나 통일이 되면 경흥대로 즉, 43번 국도가 남・북을 잇는 중심도로가 될 것이다.
< 이주석 / 대한노인회 포천시 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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