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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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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를 비추는 등불, 그 영원한 잔상
해마다 오월의 중순이 되면 거리는 카네이션의 붉은 빛으로 물듭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달력 위의 공휴일이 아니게 된 기념일일지 모르나, 생의 굽이길을 돌아온 이들에게 ‘스승의 날’은 단순히 감사를 전하는 날을 넘어, 내 영혼의 밑바닥에 깊게 뿌리내린 어떤 목소리를 복기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철학자 니체는 "제자가 계속 제자로만 남는다면 그것은 스승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역설적인 문장은 스승의 은혜가 가진 진정한 본질을 꿰뚫습니다. 스승은 우리를 당신의 그늘 아래 영원히 가두어 두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빛을 찾아 어둠 속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주 보는 눈빛에서, 같은 곳을 보는 시선으로
어린 시절 우리가 만난 스승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거대한 산과 같았습니다. 그분들은 지식이라는 이름의 벽돌을 쌓아 우리 삶의 기초를 다져주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되는 스승의 참된 은혜는 그 지식의 양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보이지 않는 유산이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맬 때, 세상이 나를 등졌다고 느낄 때 문득 떠오르는 스승의 한마디는 단순한 격려를 넘어선 '존재의 증명'이 됩니다. "너는 할 수 있다"는 그 투박한 믿음 한 조각이, 훗날 거친 세파를 견디게 하는 가장 강력한 철갑이 되었음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스승은 제자의 현재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 안에 숨겨진 미래의 가능성을 미리 보고 그것을 믿어준 유일한 목격자였던 셈입니다.
비워냄으로써 채워지는 가르침
진정한 스승은 자신을 비워 제자의 공간을 만듭니다. 당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제자의 서툰 질문에 귀를 기울일 때, 지식은 비로소 지혜로 승화됩니다. 우리는 스승에게서 '정답'을 배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질문하며 살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누군가의 선배가 되고, 부모가 되며, 사회의 어른이 된 우리에게 스승의 은혜는 이제 하나의 부채감으로 남습니다. 그 부채감은 갚아야 할 빚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받은 그 따뜻한 시선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거룩한 의무감에 가깝습니다.
다시, 그 등불을 생각하며
신영복 선생님은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둔 스승의 함자를 가만히 불러봅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건넨 것은 교과서 속의 문장이 아니라, 삶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할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비록 세월이 흘러 스승의 머리칼엔 서리가 내려앉고 우리의 모습 또한 변했으나, 그분이 비춰준 등불의 잔상은 여전히 우리의 등 뒤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스승의 은혜란, 결국 내가 나로서 온전히 설 수 있게 해준 그 모든 '믿음의 총합'입니다. 그 숭고한 사랑 앞에 고개 숙여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당신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비로소 존재합니다. 이땅의 모든 스승들께 감사드립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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