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呼稱)은 상대에 대한 예우와 격식을 갖추어 부르는 것으로, 곧 '불러 일컬음'입니다. 호칭은 모임과 장소, 상대의 사회적 지위, 가족 항렬의 높낮이, 그리고 연령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호칭법이 오늘의 시의(時宜)에 비추어 부적절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호칭은 서로를 부르는 수단이며, 또한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해 주기도 합니다. 평생 교단에서 교학상장(敎學相長)으로 봉직하다 교장직에서 정년 퇴임했기에 저 또한 '교장'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퇴임 후에는 노인대학장에 위촉되면서 '학장(學長)'으로 호칭되기도 했습니다. 교장이든 학장이든 호칭 자체는 사실 관심 밖의 일이나, 퇴임 후에도 전직(前職)의 직함을 불러주니 그 마음이 싫지는 않습니다. 한편 교장 승진 이전의 졸업생들은 저를 여전히 '선생님'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학장'이라는 호칭은 노인대학 안에서나 우리끼리 통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밖에서 쓰기에는 법적·행정적 뒷받침이 없고, 대한노인회 정관 말미 '노인대학 운영규정'에 학장 책임 하에 운영한다는 명시(明示)만 있을 뿐 자격과 기준이 없으니, 이 호칭은 부적절하고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대학도 아닌데 굳이 대학이라 하지 말고 '노인학교'라고 호칭하면 어떨까 하여, 학장 당시 대한노인회장에게 두 차례 건의한 바도 있습니다.
노인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 대한 호칭 또한 '학생'이라 부르기 어색해서 고심하던 중, '학로(學老)'로 정하였습니다. 이는 현재까지 두루 통용되어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老)'의 의미는 단순히 노인이라기보다 '공부하는 원로(元老)'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 두 차례 '학로'를 출원해 놓았는데, 필연코 등재되리라 기대합니다.
필자 사후(死後)에 자손들이 제삿날 지방(紙榜)을 쓸 때 교장과 학장 중 무엇을 택할지 궁금해지는데, 학장보다는 교장이 좋을 듯합니다.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는 어느 대학의 학장이냐고 묻는다면 답하기를 주저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10년 전, 동네 시장 2층의 한글 문해 교육장에 '학림한글학당' 간판을 걸고 할머니들께 한글을 11년간 지도하고 있는데, 저에 대한 호칭은 옛 서당(書堂)을 연상시키는 '훈장(訓長)'으로 정했습니다. 문해 과정을 수료한 60여 명의 할머니들을 길에서 만나면 "훈장님" 하고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시곤 합니다.
그곳에는 라오스 출신의 30대 초반 이주 여성도 함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이 여성을 '새댁'이라 호칭하며 귀엽게 반겨주기에 제가 새댁이라는 호칭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더니 퍽 호의적이었습니다. 근간에는 들어보기 힘든 우리말식 호칭이지만, 이 '새댁'이라는 부름이 학당의 학습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퇴임 후 포천향교에 나가 한시(漢詩) 공부를 한 지도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회원 상호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보람 있는 노후 활동을 하며 아호(雅號)로 서로를 많이 부르는데, 저의 호는 '학림(學林)'입니다. 이 호는 중백부(仲伯父)님께서 저의 학동기 시절에 지어주신 것으로, 향교에 나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배움의 숲(學林)' 속에서 한 생애를 학생들과 함께 교직 생활을 했으니, 이 호는 중백부님의 혜안(慧眼)으로 작명해 주신 것이라 새삼 감복(感服)할 뿐입니다.
이름은 죽어서도 불리어지는 것이니 작명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필자는 포천시작명위원으로 위촉되어 한동안 신생아의 작명을 성별(性別), 항렬(行列), 자형(字形), 자의(字義), 획수(劃數)에 의해 작명법에 따르면서 시대 감각에 맞게 부모의 의견을 참조해서 작명하면서 예비 이름까지 작명하기릏 자주 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어느 봄날 가족이 식당에 들렸는데 중년 부인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지 않는가. 사연인즉 자기 아들 작명을 해주었다면서 초등 5학년인데 건강하고 공부를 잘 한다면서 폰에 담아 둔 ‘작명증’을 보여주었는데 아들도 뒤따라 인사를 끔벅하지 않는가.
종중(宗中)에서의 호칭을 보면, 회장을 20여 년 넘게 맡았기에 통상 '회장(會長)'으로 불려 왔으나 직책을 면한 뒤로는 '문장(門長)'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문장은 문중에서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는 의미인데, 사실 어른이 어른 노릇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른 대접을 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부부간에도 호칭이 있기 마련입니다. 자식을 낳기 전에는 호칭을 얼버무렸고, 딸을 키우면서는 딸의 이름을 빌려 부르다 딸이 출가한 후로는 서로 '여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흔히 '당신(當身)'이라 호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하오체 자리에 쓰거나 상대를 낮잡아 일컫는 2인칭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자리에 없는 웃어른을 높여 일컫는 3인칭 대명사이며, 부부간에 서로를 일컫는 2인칭 호칭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노인의 호칭으로 순우리말인 '어르신'을 많이 사용합니다. 외출했다가 모르는 젊은이로부터 "어르신" 하고 불릴 때가 있는데, 우리말이라 부르기도 듣기도 참 좋습니다. '어르신'은 남의 아버지나 나이 많은 사람을 높여 일컫는 '어르신네'의 준말입니다.
우리는 예의 국가로서 호칭에 관한 엄격한 규범과 용례(用例)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항렬에 따른 한자어 표기는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실용적이지 못한 면이 있으니, 일상생활에서는 상대에 따른 보편적인 호칭을 사용함이 좋겠습니다. 잘못된 호칭으로 인화(人和)를 깨거나 결례를 범하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호칭 뒤에 '님'을 붙이면 무난합니다.
필자는 재임 중이나 퇴임 후나 누구에게든 호칭 뒤에 '님'을 붙여왔고, 요즘도 모임에서 상대의 전·현직 직책에 '님'을 붙여 호칭합니다. 간혹 '님'을 한자 '임(任)'으로 잘못 적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이름자 밑에 '님'이라 쓰는 것이 우리 말의 바른 표기입니다. '님'은 남의 이름이나 호칭 뒤에 붙어 높임의 뜻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연령 고하간, 가족 상호간, 친인척간, 교우간, 직장 상하간, 사제간 등에서 관례로 정해진 호칭을 그대로 따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예(禮)를 갖추어 부르는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