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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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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어머니 대상은 같은데, 왜 부르는 이름이 다를까요? 정답은 “엄마는 내가 엄마보다 작았을 때 부르는 이름이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보다 커버렸을 때 부르는 이름입니다.”
철없던 시절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는, 머리가 굵고 세상 풍파를 알게 된 뒤 어느덧 거리감이 생긴 '어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돌아가고 싶은 영원한 안식처이자, 철들지 않은 자식이 내뱉는 생애 첫 번째 말 입니다.
훈장이 된 골다공증과 우리 키우시며 닳아 없어진 엄마의 지문을 생각합니다. 불가의'부모은중경'은 엄마의 희생을 숫자로 기록합니다. 우리를 낳을 때 서 말 여덟 되의 핏물을 흘리시고, 우리를 키우실 때는 여덟 섬 네 말이나 되는 눈물 같은 젖을 먹이신다고 합니다.
그 댓가로 엄마가 얻은 것은 자식의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뼈마디를 다 내어주고 얻은 '골다공증'이라는 서글픈 훈장이었습니다. 자식이 한 걸음씩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때마다 엄마의 뼈에는 구멍이 났고, 허리는 점점 더 굽어갔습니다.
엄마는 국가가 준 주민등록증보다, 자식이 새겨놓은 그 아픈'증(症)을 먼저 몸에 문신처럼 새긴 채 오늘도 자식들을 기다립니다. 영원한 이방인, 아버지를 적습니다. 아버지는 슬픈 '손님'입니다. 어느 날 문득 아들은 어머니와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면서도, 정작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 피 땀 흘린 아버지에겐 늘 무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안의 기둥이었으나, 정작 늘 겉도는 존재였습니다. 죄책감에 젖은 아들이 큰 결심을 하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전화를 받자마자 익숙한 듯 말씀하십니다. “그래, 엄마 바꿔줄게.” 평생을 가족의 목소리를 이어주는 '전화 교환수'로만 살아온 아버지의 서글픈 습관이었습니다. 아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서요.” 잠깐의 적막이 흐른 뒤 돌아온 아버지의 말은 다정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너... 돈 떨어졌냐?” 아니라고, 정말 보고 싶어 전화했다고 거듭 말하자 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묻습니다. “너, 술 마셨냐? 왜 안 하던 소릴 해...”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취중 진담'이나 '돈 필요할 때 하는 아양'으로 여길 만큼, 아버지는 우리의 진심을 듣는 일에 너무나도 가난해져 있었습니다. 세상의 자식들이 더 늦기 전에 전해야 할 한마디가 있습니다. 밖에서는 '부장님', '사장님' 소리 들으며 당당해도, 정작 자식 앞에선 '돈 주는 기계'나 '이방인'이 되어버린 모습. 이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쓸쓸한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뼈가 더 녹아내리기 전에 아버지의 허리가 더 구부러기 전에, 아버지의 목소리에 서린 적막이 더 깊어지기 전에, 오늘 꼭 이 말을 전해보세요. “엄마,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꽃집에서 파는 카네이션이 너무 예뻐 퇴근길에 사왔는데 꽃을 드릴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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