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 봄기운이 완연한 3월의 마지막 일요일, 도반들과 함께한 강화도 둘레길에서 오래된 고목(古木)들이 꽃을 피워내는 것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수백 년 세월을 견뎌낸 나무의 몸통은 거칠게 갈라진 등껍질 같고, 가지는 굽이굽이 휘어 고단했던 풍파를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 나무는 '늙은' 나무입니다. 하지만 그 고목이 밀어 올리는 꽃은 막 피어나는 꽃잎이였습니다.
꽃나무가 늙었다고 해서 늙은 꽃을 피우는 법은 없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는 겹겹이 쌓여 두꺼워질지언정, 그 끝에서 터져 나오는 매화며 목련은 언제나 갓 태어난 아이의 뺨처럼 부드럽고 눈부십니다. 오히려 고목이 피워낸 꽃은 그 향기가 더 깊고, 빛깔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품이 서려 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낡은 몸뚱이를 거름 삼아, 세상에서 가장 젊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매 순간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었습니다. 번뜩이는 조각들을 모아보았습니다.
고목(古木)의 서(書)
몸통은 세월에 깎여 벼랑 같아도 가지 끝마다 매달린 봄을 보라 껍질은 만 권의 역사를 덮은 고서(古書)지만 그 속에서 터지는 건 갓 태어난 햇살이다 늙은 나무가 늙은 꽃을 피우는 법 없으니 생의 마지막까지 가장 어린 빛깔로 세상의 눈동자를 맑게 씻어내리라.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숫자가 늘어가는 것에 겁을 먹고, 주름진 얼굴이나 느려진 걸음걸이를 보며 "이제 내 전성기는 지나갔다"고 탄식하곤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보면 생명의 본질은 결코 늙지 않습니다. 열정의 뿌리가 살아있고, 매일의 햇살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가 피워낼 삶의 결실은 언제나 청춘의 빛깔을 띠기 마련입니다.
노인대학에서 만나는 수많은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저는 이 '늙지 않는 꽃'을 봅니다. 비록 몸은 세월의 무게를 입었을지라도, 배움에 대한 열정과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는 그 어떤 청년보다 싱그럽습니다. 그분들은 인생이라는 나무에 매년 가장 젊은 오늘을 피워내고 계시는 '살아있는 빅데이터'이자 '지혜의 샘들'입니다.
지금 혹시 "내 때가 지나지 않았나" 고민하는 분이 계신다면, 스스로라는 나무의 밑동을 믿어보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이 쌓아온 경험과 상처, 그리고 인내의 시간들은 결코 여러분을 낡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여러분이 피워낼 다음 꽃송이를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지탱해 줄 고귀한 자양분입니다.
나이는 단풍에 물든 가을일지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봄의 꽃봉오리를 품고 살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나무는 오늘도 우리에게 가장 싱싱하고 찬란한 '오늘'이라는 꽃을 피워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귀한 삶을 준중하고 존경하며 응원합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