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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성의 칼럼] 왕과 사는 할머니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11일
 
<이임성/포천신문 논설위원>
 
15세기 조선 시대 영월 땅에서 일어났던 단종 임금과에 관련된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 영화가 화제입니다. 이미 관객 1,000만명을 넘었고, 역대 최다 관객을 기록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단종은 영화 때문에 청춘 아이돌 스타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극중 스토리는 영월 호장인 엄흥도의 설화를 다룹니다. 그는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어린 임금 시신을 목숨을 걸고 수습한 후 세 아들을 데리고 은둔해서 간신히 목숨을 잇습니다.

우리 포천 땅에도 단종 임금 그 시절, 어린 왕을 모시던 여인과 세 아들의 김동적인 스토리가 남아있습니다. 그 여인은 끝내 계유정란을 일으킨 수양대군에게 처절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우리 포천 땅에 묻힙니다. 그녀의 세 아들도 모두 수양대군에게 처형됩니다. 영월 호장 엄흥도와 세 아들에 얽힌 설화보다 훨씬 비극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이야기입니다.

1441년 세종치세, 세자 문종의 비인 권씨는 단종을 낳고서 이튿날 돌아가셨습니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는 갓 태어난 원손 단종의 젖어미, 유모로 세종 후궁이자 어진 성품을 가진 혜빈 양씨를 지목했습니다. 단종 누이인 7살짜리 경혜공주(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입니다)도 혜빈한테 함께 맡겨졌습니다. 마침 혜빈 양씨는 세종 사이에서 낳은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 세 아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혜빈은 손자뻘 단종을 자신이 낳은 아들보다도 더 정성껏 보살펴 키워냈고, 경혜공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종임금께서 1450년 승하하신 후 후궁인 혜빈은 관례대로 궁궐을 나가 살았고, 그 사이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시고, 1452년 어린 단종이 보위에 올랐습니다.

단종은 즉위 당시에 이미 조부모, 부모를 모두 여읜 사고무친 신세였습니다. 의지할 데가 없던 어린 임금은 곧바로 자신을 길러준 할아버지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 할머니를 궁궐로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혜빈은 급작스럽게 궁궐의 가장 큰 어른이 되었습니다. 13살 나이의 어린 임금은 할머니 혜빈의 품에서 잠들기를 좋아했습니다. 혜빈은 왕을 보살피며 함께 사는 실세 할머니(왕사할?^^)였습니다.

혜빈 양씨는 세종의 2남인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수양대군에게 굴복하지 않고 항거했습니다. 죽음도 불사했습니다. 자신 치마폭에 숨긴 단종 임금 옥새를 수양대군이 이끌던 계유정란 세력에게 내어 주기를 거부했습니다. 혹 세종이나 문종께서 황보인 김종서 등 고명대신과 별도로 혜빈한테도 어린 단종을 부탁했을지도 모릅니다. 수양대군은 왕이 된 후 아버지 세종 후궁이자 서모인 혜빈 양씨에게 모반 혐의를 씌우고 교수형을 내려 죽게했습니다. 노산군의 간청도 소용없었습니다. 1455년 일입니다.

혜빈 양씨는 죽은 후 우리 동네 포천 신북의 세장산에 묻혔습니다. 병사공 '양치'가 방치된 혜빈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서 평토로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병사공 양치는 혜빈과 같은 청주 양씨 집안으로 종조부뻘이었습니다. 다만 혜빈묘는 소실되어 없어졌고, 현재는 고양 원당에 있는 아들 수춘군 묘 부근에 묘표, 신도비가 있는 혜빈 단소만 조성되어 있습니다. 혜빈의 세 아들도 어머니의 운명을 뒤따랐습니다. 

첫째 아들 한남군, 셋째 아들 영풍군은 금성대군과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유배형을 받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둘째 수춘군은 이미 그 이전에 금성대군 사저에서 갇혀 생활하다가 죽었습니다. 사육신 중 한 분인 박팽년은 그의 딸 순천 박씨가 혜빈 양씨의 세째 며느리였습니다. 한남군, 영풍군은 금성대군과 함께 나중에 신원되었고, 단종이 묻힌 영월 장릉 배식단에 배향되었습니다.

한편, 단종 임금의 스토리에는 사육신과 육종영이 등장합니다. 세조는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 등 사육신 뿐 아니라, 전주이씨 종친들도 여럿 죽였습니다. 변고를 당한 종친에는 세종의 아드님인 안평대군,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5분이 있고,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 의안대군의 손자 화령군도 포함됩니다. 이분들이 후세가 추앙하는 여섯 종친이란 뜻의 육종영(六宗英)입니다.

충절의 고장인 포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충목단은 단종 임금의 슬픈 스토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입니다. 충목단은 영조때인 1746년 사육신 중 한 분으로 포천 출신인 유응부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제단으로 설치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 시절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고종 임금 때인 1890년 포천 유림의 상소로 충목단이 복구되면서 유응부 장군 외에 혜빈 양씨 시신을 수습한 후 낙향한 양치 선생, 혜빈 양씨 소생으로 육종영인 한남군(이어)이 추가 배향되었습니다. 

지금도 충목단 안에는 계유정란으로 폐위된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충신들인 유응부 장군, 한남군, 양치 세 분의 비석이 나란하게 서 있습니다. 아마 세 분도 흐믓한 표정으로 왕사남 영화를 보면서 즐기고 계실겁니다. 이상이 ‘왕과 사는 할머니', 손자뻘 어린 임금을 지키려다 순절하여 포천에 묻힌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스토리였습니다.

< 이임성 변호사 / 포천신문 논설위원, 현)법조윤리협의회 회장 , 전)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회장, 전)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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