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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173

​청산(靑山), 서편제의 가락을 따라 친구들과 느린 시간을 걸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02일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돌과 흙, 그리고 소리로 빚어낸 인고의 세월 ​청산도는 척박한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일궈낸 선조들의 위대한 투쟁과 예술적 한(恨)이 서린 땅입니다.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내려온 정착의 역사는 산비탈을 깎아 만든 '구들장 논'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돌을 쌓고 진흙을 발라 물을 가두었던 그 끈질긴 생명력은, 섬사람들이 견뎌온 억척스러운 세월의 훈장과도 같습니다.

​소리의 길, 서편제길을 내고은 님들과 걸었습니다.유봉과 송화, 동호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그 구불구불한 돌담길은 이제 '슬로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역사는 단순히 기록된 문자가 아니라, 굽이치는 길 위에서 울려 퍼지던 소리꾼들의 숨비소리와 가락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범바위의 자기장 기운과 보리밭 사이로 흐르는 밞의 선율을 따라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과 걷는 이 길 위로, 어디선가 낮은 북소리와 함께 애절한 서편제의 선율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강력한 자기장이 흐르는 신비로운 범바위 끝에 서면, 발아래로 펼쳐진 다도해의 푸른 물결이 마치 거대한 판소리의 한 대목처럼 웅장하게 다가옵니다. 친구들과 어깨를 맞대고 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니, 세상의 복잡한 소음은 사라지고 우리들의 웃음소리만이 파도와 섞여 나갑니다.

​나른바다과 초록빛 보리가 넘실대는 돌담길을 걷다 보면, 영화 속 세 주인공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내려오던 그 유명한 롱테이크 장면이 겹쳐 보입니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응 응 응...." 비록 소리꾼은 아니어도, 친구들과 함께 걷는 이 걸음 자체가 가락이 됩니다. 삶의 애환을 예술로 승화시킨 서편제의 가락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가져온 고민들을 이 길 위에서 달래고 다독여 봅니다.쑥향기에 섞여 드는 환청 같은 대금 소리가 우리의 여행을 더욱 애틋하고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범바위의 웅장한 호연지기의 기상과 구들장 논에 담긴 선조들의 땀방울과 지혜 , 그리고 고분군이 말해주는 유구한 시간 이 모든 풍경 위로 서편제의 아름다운 선율이 덧입혀진 청산도는 우리에게 단순한 관광지 그 이상이었습니다.

​척박한 땅을 옥토로 일궈낸 구들장 논처럼, 그리고 한(恨)을 흥(興)으로 풀어낸 소리꾼의 가락처럼, 우리 친구들의 우정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고 넉넉해지길 소망해 봅니다. 이 느린 섬에서 배운 '함께 걷는 법'을 가슴에 품고,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3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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