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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동규] 3·1 독립선언서를 바르게 표기하고, 낭독하여 독립정신을 고양하자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2월 19일
 
< 박동규 / 전 영북고 교장(국어 한문 전공),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민족대표, 3·1독립선언서 해설가 >
 
1. 헌법 전문, 3·1독립선언서
우리나라 헌법전문에‘유구(悠久)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과 불의(不義)에 항거(抗拒)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繼承)하고......’라고 표기하였기에 3·1독립선언서는 헌법 위에 있는 민족의 최상위의 헌장(憲章)이다. 세계인에게는 세계인권선언서, 우리 국민에게는 3·1독립선언서는 금과옥조(金科玉條)의 장전(章典)이다.

2. 조선 청년독립단의 2·8독립선언서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앞두고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를 제창하자 이러한 사조(思潮))에 호응하여 독립을 쟁취(爭取)하겠다는 민족 결의가 무르익어서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 유학생들의 조선청년독립단이 중심이 되어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가 초안(草案)한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3. 3·1독립선언서 작성, 민족 대표 선언문 낭독
2·8선언서 발표가 기폭제(起爆劑)가 되어 1919년 3월 1일, 선언서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작성하고, 공약(公約) 3장은 행동강령으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추기(追記)했으며, 서명(署名) 일자를 공란(空欄)으로 둔 것은 거사일(擧事日)을 미리 알릴 수 없기 때문에 공란으로 두었다. 종교별 대표는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으로 총 33명이며, 민족 대표는 의암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 대표 33인이 선언한 것이 3·1독립선언서이다. 그 해가 기미년(己未年)이기에 기미독립선언서로 통칭(通稱)하고, 선언서·선언문 등으로 약칭(略稱)하기도 한다.

4.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 탑골공원 시위
1919년 3월 1일, 당일 12시에 태화관에서는 민족 대표가 모여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오후 2시 탑골공원 팔각정(八角亭)에서는 학생과 시민 1천 5백여 명이 운집(雲集)한 가운데 치세(稚世) 정지용(鄭芝溶)의 선언서 낭독으로 만세 운동이 시작되어 시가행진이 이어지고,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擴散) 되었다.
 
5. 상해 임시 정부 수립, 민주공화제 정부의 수립
3·1운동을 계기(契機)로 1919년 4월 11일,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효율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臨時政府)를 수립하여 9월에 임시 헌법 공포(公布), 11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이동휘(李東輝) 국무총리를 선출했다.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로 삼권분립으로 입법기관의 의정원(議政院), 사법기관인 법원, 행정기관의 국무원(國務院)을 구성했으며 <독립신문>을 간행(刊行)하여 독립 정신을 고취(鼓吹)하였다.

6. 3·1독립 운동, 독립선언서의 문장 구성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일을 기해서 일본침략에 항거(抗拒)하여 2천만 조선 민족의 독립운동의 거사(擧事)다. 전 조선 민족에게 보낸 선언문 문장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根據)하고, 장엄(莊嚴)하고 웅변적(雄辯的)으로 표현하고 서술(敍述)하였으며, 기(起)·승(承)·전(轉)·결(結) 4단계로 구성하였다.

7. 선언서의 요지, 수사법에 따라 선언문의 문장 구성
선언서의 요지(要旨)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선언의 정당성(正當性)과 필연성(必然性)을 밝혀 우리 민족의 굳은 결의와 각오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논리적이며 의지적이고 대중을 선동(煽動)하는 문장으로 영탄(詠嘆)·대구(對句)·열거(列擧)·점층(漸層)·비교(比較) 등의 수사법(修辭法)의 문장이다.

8. 선언서의 문체, 선언서의 인쇄 및 배포
선언서 문체(文體)는 한주국종체(漢主國從體)의 국·한문(國·漢文) 혼용체(混用體)로 총 1762 자 이며 한자가 62%에 달하는 강건체(剛健體) 문장으로 인쇄는 1919년 2월 27일, 보성사에서 2만 1천 부를 인쇄하여 2월 28일에 배포했는데 3월 1일 탑골공원의 시위 학생에게 1천 5백 부를 배포하고, 나머지는 전국 각처에 보냈다.

9. 탑골공원의 선언서비 오기 제기, 선언서 모사판의 건립
민족의 성지(聖地) 탑골공원에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銅像) 등이 있고, 동편에 3개 비 가운데 중앙 대형 선언서비를 비롯하여 좌로 영역(英譯)서언서비·우로 국역(國譯) 선언서비 3개가 있다. 필자는 중앙의 큰 선언비에 오류(誤謬) 한자 6자와 북위체(北魏體) 한자 250여 자로 표기한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원본선언서비 건립을 위해 대통령·국가보훈처·종로구청 등에 국민 제안하였지만 무위(無爲)로 끝나고, 2015년 6월 7일, 관할(管轄) 종로구청이 선언서 원본 4배 크기의 원본선언서 모사판(模寫板)을 세워 답방(踏訪)하는 국민에게 원본선언서를 첫선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문화재청이 사적(史蹟)제 354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10. 독립선언서의 보성판·신문판의 식별
3·1독립선언서는 보성사(普成社) 판과 신문관(新文館) 판으로 구분되는데 보성사판은 3·1독립운동 당시 보성사에서 간행한 것으로 원본선언서이며, 신문관 판은 8·15광복 후에 대량으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초 원본과 표기가 일부 다르다. 두 판본(板本) 구분은 국어 표기의 맞춤법과 한자 표기로 알 수 있다. 보성사판 원본선언서는 등록문화재 제664-1로 고시(告示)되었고, 천안독립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하였으며, 3·1운동 당시 배포한 선언서를 탑골공원 시위에 참가한 휘문의숙 4년 재학 중이던 월탄(月灘) 박종화(朴鐘和)의 후손이 전래해 온 선언서와 3·1운동 당시 평양에서 일본인이 보관했던 선언서를 전래해 온 것을 그 손자가 보내온 평양본 등의 희귀본(稀貴本)으로 전래해 온 것 뿐이며, 전국에 산재(散在)해 있는 선언서비나 선언문은 대부분 신문관 판이다.

ⓒ 포천신문

11. 3 ․ 1독립선언서 서두 鮮朝는 朝鮮
원본선언서 서두의 ‘吾等는 玆에 鮮朝의 獨立國임....,,’에서 ‘朝鮮’이‘鮮朝’로 앞뒤가 바뀐 것은 당시 위급한 상황에서의 조판(組版)·인쇄(印刷) 과정에서 오류(誤謬)로 추정된다.

12. 3 ․ 1독립선언서 한문 고어 문장, 기념식 추념식서 국역 선언서의 낭독
선언서 1762자 중 한자가 62%에 달하며, 어려운 한자와 1933년대 당시 국어 표기로 1933년 한글맞춤법 표기(標記) 이전에 따랐는데 ㆍㅿ ㆆ ㆁ의 4자 소멸(消滅)한 후다. 한문 고어(古語)를 혼용(混用)한 긴 문장이기에 경축식·추념식에서 낭독자 가운데는 선언서의 한자에 독음(讀音)·현토(懸吐)을 달아서 읽거나 선언서 전문을 국어로 표기해서 낭독하는 경우가 있고, 일반 시민들은 경축식·추념식에서 선언서의 한자의 낭독이 지루하게 느껴져 낭독의 의미가 없다시피 했다. 이에 일반 국민이 쉽게 독해할 수 있도록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의 국역(國譯) 한글 풀이본 독립선언서로 대체(代替)할 것을 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광복회 등에 청원한 결과 2012년 3월 1일, 3·1절 제93주년 경축식·추념식에서부터 국역 선언서의 낭독으로 실행에 옮겨졌고, 추념식에 필자가 초청되어 내외가 참석한 바 있는데 선언서의 새로운 독해(讀解)로 국민의 독립 정신 고양(高揚)의 큰 계기가 되었다.
 
13. 3·1독립선언서는 강희자전 명조체 해서로 표기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부 고시(告示) 제1992-19호호로 1992년 10월 30일, <고등학교 한문과 교육과정령(敎育課程令)>에 따르면 ‘중등학교에서는 강희자전(康熙字典)에 바탕을 둔 명조체(明朝體) 해서(楷書)로 표준 삼는다.’로 엄연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 연장선상으로 보아 한문 학습을 이수(履修)한 학생 수준이면 누구나 독립선언서를 독해할 수 있기에 선언서는 강희자전 해서체로 필서(筆書) ․ 각석(刻石)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14. 3 ․ 1독립선언서 <대한민국 관보> 등 수록 대국민 홍보
필자는 보성사판의 원본선언서를 <대한민국 관보>에 수록하여 홍보할 것을 국민제안으로 포천시를 경유해 행정안전부 ‧ 국가보훈처에 제안하여, 2014년 8월 18일, 관보 18329호에 수록(收錄)해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원본선언서를 국민에게 첫 선을 보이게 되었고, <國會報>·<圖書館文化> 등 8개 기관지에 수록을 요청하여 원본선언서를 국민에게 널리 홍보케 했다.

15. 고교 국어교과서 선언서의 오류 한자 수정, 수정판 인쇄· 배본
고교 교사 시절 국어 시간에 독립선언서를 교수-학습한 경험과 3 ‧ 1절 기념식 행사 시에 독립선언서를 대독(代讀)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선언서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선언서에서 오류(誤謬) 한자를 쉽게 지적할 수 있었다. 고교 국어교과서 천재교육사 발간 상권 116~123면에 수록한 선언서의 오자 한자를 발견 ‧ 지적하여 교육과학기술부 편수관에게 수정을 3년간 촉구하였으나 수정을 계속 미루기에 2010년 11월 29일,‘포천시 2010 평생학습 포천시 교육도시 비전 선포식’에 특별 초청 강사인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장관에게 독립선언서 오류의 수정(修正)을 직접 제안하여 2013년부터 수정 ‧ 발간 ‧ 배본케 했다.

16. 각종 문헌 자료에서의 원본선언서 수록
제안자가 접한 독립선언서 원본의 모사본(模寫本)을 수록한 것은 경인문화사가 발행한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조선독립운동사>의 31쪽, 만해기념관에서 발행한 <남한산성에서 만해 한용운(韓龍雲)을 만나다>의 38~39쪽, 삼일정신선양회에서 발행한 <獨立宣言書>의 부록에 수록한 선언서 모사본 등 4개 문헌 자료에서 원본독립선언서 모사본을 접할 수 있었다.

17. 3·1독립선언서 교수‧학습본 편찬 배포, 선언서 필사인쇄본 제작 배포
3·1독립선언서를 각급 학교 학생에게 쉽게 독해(讀解)할 수 있도록 초등학교 학생과 일반시민에게는 3·1운동 100주년을 기해서 정부가 제정한 <쉽고 바르게 읽는 선언서>를, 중학교 학생에게는 이희승 교수의 <국역 3·1독립선언서 >를, 고교 학생에게는 <원본 3·1독립선언서>를 지도하기 위한 25면의 <3·1독립선언서 교수-학습본> 50부를 편찬·제작하여 관내 각급 학교 국어 교사에게 배본·활용케 했다. 필자는 선언서를 모조반절지(模造半切紙)에 필사인쇄본(筆寫印刷本) 280매를 필사 · 인쇄 · 제작하여 역대 대통령, 관련 부처 장관, 대한노인회를 비롯한 경기도연합회 산하 44개 지회 및 관내 각급기관 등지에 보내어 게시(揭示)케 하여 독립 정신 선양(宣揚)에 관심을 환기(喚起)시켰다.
 
18. 3·1운동 100주년기념추진위원회 위원 위촉, 활동
정부의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 업무에 필자가 ‘3·1운동 100주년기념추진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委囑)되어 다양한 문화 행사, 학술 발표, 조사 사업, 자료공모전 등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후원사업에도 3회 참여하였다. <3·1정신>가을호에 ‘3·1운동 민족 대표 서명 33인 중, 박동완 선생이 포천 출신임을 100년 만에 최초로 고증(考證)하다.’ 를 기고(寄稿)하여 전 국민과 포천 시민에게 새로운 사실(史實)을 알려 시민의 긍지를 갖게 하였다.

19. 3·1문화재단에서 간행한 <3·1운동 새로 읽기> 초판, 재판 간행
3·1문화재단에서 간행한 <3·1운동 새로 읽기> 초판에 오자 3자를 발견하여 2013년 9월 5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재단을 직접 방문해 수정을 촉구하여 2015년 3월 31일,개정판을 완벽하게 수정 발행했으며, 재단에서는 전국적으로 무상으로 보급해 독립 정신 고양에 크게 기여하여 선언서의 한자 오자를 수정한 첫 사례로 각광(脚光) 받게 되었다. 선언서의 비 가운데 서대문형무소 공원 내에 세워진 선언서비는 하자(瑕疵) 없이 건립되었고, 그 외 대부분의 선언서 비는 신문관 판으로 오기했기에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20.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전 국민에게 보급
3·1독립선언서를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이 국역(國譯)은 한 지 70년 동안 고교 국어교과서 수록 되여 독립정신 고양의 계기가 되었으나, 일반 국민은 문장 독해가 어려워서 정부가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를 새로 작성하여 대대적으로 홍보 보급해서 온 국민이 쉽게 읽고 이해해서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현창(顯彰)하고, 해외 교포들에게 5대 외국어로 번역 보급해서 독립 정신을 대외적으로 고양하는 새로운 계기도 마련하였다. 3·1운동에 대한 이해와 독립운동의 정당성, 민족의 결의와 각오를 촉구하기 위해 온 국민이 선언서를 숙독(熟讀)하여 3·1정신을 고양(高揚)해야 하지 않겠는가.

21. 각급 학교 국어 교과서에 선언서 수록, 독립정신 고양
국민의 독립 정신 고양을 위해 국가는 국어 교육과정을 개편(改編)하여 3·1독립선언서의 원본선언서는 고교 과정, 국역선언서는 중학교 과정, 쉽고 바르게 읽는 선언서는 초등학교 과정에서 선언서의 교수-학습 기회를 제공할 것을 5년간 지속적으로 국민 제안했다. 중·고교는 검인정임으로 교육과정의 개편(改編)이 전제가 되기 때문에 초등만은 국정으로‘쉽고 바르게 읽는 선언서’를 국어 교과서에 수록할 것을 전전 대통령, 전 대통령에게 제안했지만 무위(無爲)로 끝나고, 2026년 1월 6일, 현 대통령에게 국민 제안했더니 교육부로 이첩되었다. 필자는‘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 서두(序頭)를 인용해서 제안했고, 교육부도 이 취지에 동의하여 추진하겠다는 답신을 받았으니 초등만이라도 선언서를 국어 교과서에 수록(收錄)케 되어 감회가 더없이 크다.
 
22.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쉽고 바르게 읽는 선언서’ 수록
교육부는 2026년 1월 20일, 국민제안에 대한 답신서에서 교과용 도서의 개발 시 편찬진(編纂陳)과 발행사는 3·1독립정신을 준수하여야 할 것으로 전제하면서 ‘앞으로 편찬진과 발행사와 협력하여 교육과정에 적합하고 학생들이 올바른 이념(理念)과 가치(價値)를 배울 수 있는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는 회신(回信)을 접수했으니 비록 늦었지만 천만다행이요, 국가 교육의 일환으로 기대하는 바 매우 크다.

                                                 선언서(宣言書)
ⓒ 포천신문

        回憶三一獨立運動百七周年(회억삼일독립운동백칠주년)

精神獨立國源流 (정신독립국원류) 삼일 독립 정신 국가의 원류이리오
三一宣言百七周 (삼일선언백칠주) 삼일독립선언 백 칠년 되는 해일세.
彈壓倭夷連到處 (탄압왜이련도처) 왜이 탄압이 전국 도처에 이어졌고
示威民衆起街頭 (시위민중기가두) 민중 시위가 가두 마다 봉기하였네.
喊聲萬歲高坊曲 (함성만세고방곡) 만세 함성이 전국 방방곡곡 높았고
公約三章讀閣樓 (공약삼장도각루) 공약삼장을 팔각루에서 낭독하였네.
回憶主權恢復史 (회억주권회복사) 주권 회복해 역사 모두가 회억하며
追崇烈士古今謳 (추숭렬사고금구) 애국 열사 추숭이 고금에 구가하네.

< 박동규 / 전 영북고 교장(국어 한문 전공),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민족대표, 3·1독립선언서 해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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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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