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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169

이제는 ​머무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2월 09일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채움의 속도를 멈추니 비로소 '존재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은퇴 후 십여 년, 무언가를 덜어낸 빈자리에 이제는 사람의 온기를 들입니다. ​창가에 앉아 바닥에 길게 눕는 햇살을 바라보는 일이 일과가 된 지도 수 년이 흘렀습니다. 

현직 시절, 나의 하루는 늘 바깥을 향해 팽팽하게 열려 있었습니다. 책임이라는 명분 아래 감정은 늘 뒷전이었고, 성실이라는 미덕 속에 정작 '나'라는 존재는 숨겨둔 채 살았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정돈된 삶'이라 치켜세웠지만, 정작 내 마음이 온전히 머물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성취는 화려했으나, 매 순간 깨어 있는 '현존'의 시간은 가물어 있었습니다.

​노자는 “채우려 할수록 비워진다”고 하였으나, 나는 평생 채우는 기술만 익혔을 뿐 비우는 지혜는 은퇴 후에야 겨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최소한이 확보되었다면 존재의 방향을 물어야 했건만, 나는 늘 익숙한 목표만을 쫓았습니다. 그사이 사랑은 순위에서 밀려났고 마음은 딱딱하게 굳었으며, 침묵은 소통이 아닌 습관이 되었습니다. 장자의 말처럼 '우리는 잠시 머무는 존재일 뿐'인데, 정작 머무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인생이라는 길을 통과하기에만 급급했던 셈입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뿐”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외부의 평가와 결과에 나를 맡기며 살았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로서의 자각도, 빅터 프랭클이 절망 속에서 건져 올린 삶의 의미도 책장을 넘기며 뒤늦게야 만났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죽음 앞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병상”이라 고백했듯, 재산은 다시 얻을 수 있어도 흘러간 계절과 소진된 삶은 결코 환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통감합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야 깨닫습니다.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은 사랑으로 점철된 기억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배우자의 다정한 속삭임, 오랜 친구와 나눈 빛바랜 대화들만이 마지막까지 동행할 진짜 재산입니다.

​후회는 늘 삶의 끝자락에 도착하기에, 나는 이제 더 이상 삶을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지금 하고, 마음이 닿는 일은 지금 시작하려 합니다. 바쁜 약속보다는 느린 식사를, 거창한 업적보다는 조용한 동행을 선택합니다. 우리가 쌓아야 할 것은 성과가 아니라 마음이며, 지켜야 할 것은 체면이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존재했느냐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밖으로 하루의 소음이 잦아들고 저녁이 조용히 접힙니다. 단순히 ‘살아 있음’이 본질이 아니라,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행위’가 삶의 본질임을 비로소 느낍니다. 비워낸 자리마다 스며드는 이 온기가 이토록 달콤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 김남영 / 동두천노인대학 학장 >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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