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이면 우리는 뉴스 화면 속에서 처참하게 구겨진 차량들과 아수라장으로 변한 도로를 마주한다. 최근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인근 도로에서 발생한 7중 추돌 사고 역시 그 비극의 연장선이었다. 살얼음이 낀 도로 위에서 제동력을 잃은 차량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서로를 들이받았고, 평온했던 출근길은 순식간에 공포의 현장으로 변했다. ‘도로 위의 암살자’라 불리는 블랙아이스(Black Ice)가 종종 무고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고 있다.
이번 사고가 더욱 뼈아픈 이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인재(人災)’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새벽에 이미 한 차례 사고가 발생해 제설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지점 후미의 결빙 구간을 방치한 ‘반쪽 제설’이 더 큰 연쇄 추돌을 불러왔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행정의 안일함과 사후 약방문식 대응이 시민의 안전을 벼랑 끝으로 내몬 셈이다.
< 보이지 않는 공포, 블랙아이스의 실체와 물리적 한계 >
블랙아이스는 아스팔트 표면의 미세한 틈새로 스며든 비나 녹은 눈이 밤사이 기온 강하로 인해 투명한 얼음막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운전자의 시각으로는 단순히 도로가 젖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서의 제동 거리는 일반 건조 도로의 9배, 심지어 눈길보다도 3배 이상 길어진다.
특히 산간 지역의 그늘진 곡선 구간이나 터널 출입구는 블랙아이스가 상주하는 ‘사선(死線)’이다. 기온 차가 급격히 발생하는 터널 입출구는 결로 현상으로 인해 습기가 많아 얼음막이 형성되기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는 아무리 베테랑 운전자라 할지라도 물리적인 마찰력을 잃는 순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운전 기술에 생명을 맡기기에는 도로의 상태가 너무도 가혹한 것이 현실이다.
< 첨단 기술의 융합, ‘스마트 도로 열선’이 유일한 해답이다 >
이제는 매번 사고 후에나 달려오는 제설차와 염화칼슘에만 의존하는 재래식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교통 선진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이라면, 더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안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 핵심 대책이 바로 ‘도로 열선 시스템(Snow Melting System)’의 의무화와 스마트 제어 기술의 도입이다.
도로 열선은 아스팔트 하부에 전기 열선을 매립하여 노면 온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 자동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는 염화칼슘 살포로 인한 도로 파손(포트홀)이나 차량 부식, 환경 오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적 대안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센서 기술과 결합하여 눈이나 비가 오기 전 노면의 습도와 온도를 미리 파악해 결빙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지능형 시스템까지 발전해 있다. 이러한 '예방적 인프라'가 설치되었다면 포천의 7중 추돌 사고와 같은 비극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경제적 논리를 넘어선 생명 존중의 행정 >
물론 막대한 설치 예산과 유지 비용이 걸림돌로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연쇄 추돌 사고 한 건으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차량 수리비와 의료비, 도로 통제로 인한 물류 마비, 그리고 무엇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인명 피해의 사회적 비용을 따져본다면, 도로 열선 설치는 ‘소비’가 아니라 가장 확실하고 수익률 높은 ‘안전 투자’다.
전국의 고속도로와 국도 중 블랙아이스 위험 지역은 이미 데이터로 명확히 파악되어 있다. 예산의 한계가 있다면 위험 등급에 따라 단계적으로라도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사고를 당한 유가족들 앞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안전은 비용의 관점이 아닌,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이자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 정부와 지자체에 강력히 촉구한다 >
첫째, 사고 다발 구역인 산간 도로, 급경사지, 그리고 모든 터널 출입구를 ‘특수 재난 관리 구역’에 준하여 관리하고 ‘도로 열선 설치 의무화’를 법제화해야 한다. 둘째, 지능형 교통 체계(ITS)와 연계해 노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운전자에게 전송하는 경보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셋째, 제설 행정의 패러다임을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
겨울은 매년 찾아오고, 블랙아이스는 매년 그늘진 곳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운전 조심하라"는 공허한 당부보다 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낸 세금이 차가운 얼음 도로를 녹이는 뜨거운 열선으로 돌아올 때, 국민은 비로소 국가라는 보호막 안에서 안심하고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더 이상 ‘설마’ 하는 안일함에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잡아서는 안 된다. 차가운 얼음 위를 달리는 국민의 불안을 멈추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통 강국으로 가는 길이며 행정 당국이 지금 즉시 실행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이제 도로 위 침묵의 살인자와의 전쟁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다.
2026년 01월 12일
최호열 / 포천신문사 회장, 시인, 경기대진테크노파크 임원, (사)이디오피아벳 IT.에너지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