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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춘천교육대학교 전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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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잘 아는 미국의 한 인물이 화를 냈다. 그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일어난 8개의 전쟁을 중재한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평가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2025년 노벨 평화상은 베네수엘라의 여성이자 야당 지도자인 마차도(Maria Corina Machado, 1967년 출생)에게 돌아갔다.
“베네수엘라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증진시켰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전환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은 200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2024년에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작품인 <소년이 온다(2014)>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것이다. 국가 폭력의 개인적 내면화를 다룬 이 소설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관점을 되돌려보는 계기를 주었다. <채식주의자>(2007)는 상당히 난해한 소설이다. 인간 의식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폭력의 구조를 다룬 소설이었다.
사실 노벨상의 백미는 과학 분야의 수상이다.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이 그것이다. 지난 10월 초순에 전 세계의 이목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쏠렸다. 노벨상 발표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첫 번째 발표는 10월 6일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The Nobel Assembly at Karolinska Institutet)가 노벨 생리의학상으로 브런코(Mary E. Brunkow, 미국), 램스델(Fred Ramsdell, 미국), 사카구치(坂口志文, 일본)를 선정했다. 수상자들은 인체가 자신의 세포를 공격하지 않도록 막는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 Treg)’의 존재와 기능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카구치는 1989년 교토대에서 T세포 중 자가면역을 억제하는 소집단 존재 발견하여 처음으로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라고 명명한 학자였다.
10월 7일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에서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클라크(John Clarke, 영국), 드보레(Michel Devoret, 프랑스), 마티니스(John Martinis, 미국)에게 돌아갔다. “거시적 규모의 초전도 회로에서 양자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를 실험적으로 입증한 공로”가 수상 이유였다.
10월 8일에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서 노벨 화학상을 발표했다. 이번 상은 “금속–유기 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s, MOFs)”의 창시자들에게 돌아갔다. 야기(Omar M. Yaghi, 요드단 출신 미국), 롭슨(Richard Robson, 호주), 기타가와(北川進, 일본)는 각각 독립적으로 MOF의 설계 원리와 응용 분야를 개척하여, 화학의 공간적 사고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노벨상 과학 분야 발표에 일본은 흥분했다. 첫 발표인 생리의학상에 사카구치가 ‘조절 T세포’ 연구를 인정받은 것이다. 사카구치의 연구는 면역학계에서 처음엔 비주류로 취급받았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일관된 연구 끝에 혁신적 결과를 낳았다. 이는 장기적 안목과 자율성이 보장된 연구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의 국립대학들은 수년간 이공계 연구비를 꾸준히 증액해 왔다. 이를 통해 연구자가 안정적인 ‘기반 경비(base funding)’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연구자가 연구비 경쟁에 쫓기지 않고 핵심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화학상 수상자 기타가와가 ‘금속 유기골격체 (MOF) 연구’로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기타가와 교수의 MOF 연구 또한 상업화 가능성이 불확실하던 시기부터 오랜 기간 탐구된 순수 기초연구의 결실이다. ‘무엇을 연구할지 결정하는 자유’를 존중한 정책이 결국 노벨상으로 이어진 셈이다. 일본의 사례는 “선택과 집중” 중심의 단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장기 기초연구 생태계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 준다.
이로써 일본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는 총 27명으로 늘어나 아시아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일본 출생자 포함 기준). 국적 기준으로는 미국, 영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권이다. 일본의 이런 성과는 우연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5년 단위의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해 왔다. 2020년 이를 ‘과학기술·이노베이션 기본법’으로 개정하며 장기 연구 지원을 강화했다. 단기적 성과 중심의 정책 대신, “기초연구·사회문제 해결·신기술 창출(양자·AI 등)”을 아우르는 균형적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노벨(Alfred Nobel, 1833–1896)의 유언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그 기술이 전쟁과 살상의 도구로 쓰이며 ‘죽음의 상인’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생의 말년, 그는 인류에게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길은 지식과 인류애에 바탕한 과학의 진보임을 깨닫고, 자신의 유산을 “인류의 복지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라는 유언으로 남겼다. 노벨상은 그렇게 탄생했다. 따라서 그 본질은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인류 공동선(common good)을 향한 과학적 성취의 윤리적 상징이다.
우리 사회가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누가 언제 노벨상을 받느냐”가 아니다. 그 수상에 이르는 토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초과학을 중시하고, 실패를 연구의 일부로 인정하며, 연구자에게 자율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국제 협력의 개방성과 학문적 다양성,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키워야 할 것이다.
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춘천교육대학교 전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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