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경자(사진․주부명예기자)
5살 때 일이다. 둘째 언니는 주말이면 김말이 과자를 한 상자 들고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럴때면 나는 신이나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나중에 친구들에게 신나게 자랑만했다.
30년전 우리네 살림은 그랬었다. 집에는 가끔 들르시는 아버지. 시장에서 자판장사를 하시는 엄마를 도와 둘째 언니는 초등학교도 포기하고 서울의 과자공장에 취직을 했던 것이다.
그후로도 언니는 계속 어린 동생을 위해 공장을 다녔고 덕분에 우리 동생 삼남매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다. 언니는 그후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으나 형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또다시 가장이 되어 어린 조카들을 키워냈다. 어려서부터 배워온 봉제기술로 작은 공장을 얻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언니는 이제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고 지긋지긋한 일의 전쟁터에서 헤어나 새로운 분을 만나 인생을 꾸며가고 있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서러움은 50평생 늘 한이 되어 남아 있었다. 언니는 혼자서 회사경영을 하다보면 못 알아 들어도 대충 아는 척 넘기며 어설픈 웃음으로 위기를 넘기며 고개를 돌려야 했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던 언니가 50이 넘은 나이에 남들이 14년 동안 이룩한 배움의 문에 뛰어 들었다. 검정고시였다. 낮밤을 책과 싸우며 씨름하더니 지난 8월에 드디어 대입 검정고시 자격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한번의 실수도 없이 일사천리로.... 아! 그 얼마나 뿌듯했던가?
11월16일 수능시험을 치르고 언니는 말했다. ꡒ나도 수능시험을 치렀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점수는 기대하지 말라ꡓ고 말이다. 그랬다. 언니는 남들이 20대에 경험했을 일을 이제야 해 보았다는 아니 평생 못할줄 알았던 일을 해냈다는 것에 스스로 감격하고 만족하고 있었다.
앞으로 대학교도 졸업하고 언니는 또 다른 도전을 할 것이다. 실버타운을 경영하고 싶다고 했는데 언니는 그보다 더 큰 꿈을 반드시 이루어 내리라 믿는다.
언니의 도전은 내겐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할 이유이고 어떠한 어려운 경우라도 극복할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다. ꡒ언니 멋진 대학생활 기대할게!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