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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춘천교육대학교 전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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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개발한 과학기술 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전쟁 기술이다. 국가나 민족 심지어는 작은 단위인 부족이 생존하려면 이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 또한 인류의 역사이자 문화 중 하나였다. 이전에 기고한 “아르키메데스와 실용성”을 SNS에 소개하니 어떤 과학기술인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태양광선을 모아서 적함을 불태우는 무기가 정말 가능했을지는 의문입니다(이븐 알 하이삼의 [광학의 서] 라틴어본에도 나옵니다만 ......). 오늘날의 고출력 레이저 무기에 비견되는 셈인데, 배를 불태울 정도로 오목거울 등으로 태양광을 집속하는 것이 당시 기술로 가능했을지요?”
내 답변은 다음과 같다. “고출력 레이저에 비견할 수 있는 오목거울을 이용한 장치는 후세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 결과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태우는 거울(Burning Glass)’로 알려진 이 무기는 루키아노스(Lucian)가 2세기에 쓴 책 [목욕탕, Hippias]과 안테미우스(Anthemius)가 6세기에 저술한 책 [불타는 거울] 등에서 아주 그럴듯하게 서술했습니다. 나중에 특정 위인의 업적을 과장하는 이른바 ‘과학에서 국뽕’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여러 가지 전쟁 무기를 고안했고 이를 방어하는데 이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불타는 거울’과 같은 대단한 발명은 한마디로 과장이자 거짓이었다. 우리는 특정 위인을 미화하며 업적을 덧붙이는 일에 상당히 익숙하다. 국수주의적인 편견 때문에 그렇다. 많은 교양인들은 맹목적인 국가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과도한 집단 우월의식인 쇼비니즘’(Chauvinism)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비판한다. 쇼비니즘은 우리의 이성과 보편성에 대한 도전이며 인류 공존의 방해물이 되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현실을 보자. 미국이 최강국이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이 최강국이 된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성립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영향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미국은 군수 산업에 과학 연구를 결합시킨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개발)’를 진행시킨 바 있다. 이로부터 산업계, 학계, 군부가 견고하게 얽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냉전(1947~1991) 시기에 미국은 구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엄청난 국방비 지출을 유지했다.
전시에만 무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상시적인 무기 생산 체제가 미국 경제와 정치에 굳게 자리 잡고 말았다. 세계 대전을 직접 수행했고 나중에 제34대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D. D. Eisenhower, 1890-1969)는 군산복합체에 대해서, 1961년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그는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군인이었기에 이 경고를 우리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
“정부 내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군산복합체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불필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잘못 위치한 권력이 재앙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 결합체의 무게가 우리의 자유 또는 민주적 절차를 위협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오직 경계하고 지식 있는 시민만이 거대한 군·산업 방위 체계와 우리의 평화적 수단 및 목표가 올바르게 조화되도록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안전과 자유가 함께 번영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원전 3세기에 활약했던 아르키메데스의 무기 개발은 과학기술이 어떻게 국가의 존망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 동시에 그것은 전쟁 기술의 한계를 드러내는 역사의 교훈이 된다. 시라쿠사는 신무기 기술로 잠시 버틸 수 있었지만, 정치적 지혜와 국제적 연대의 부재는, 도시국가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 방산이 상당한 수준을 이루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수출국의 지위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 기술을 평화와 인류 공동체의 번영에 연결하는 전략적 전환과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춘천교육대학교 전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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