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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춘천교육대학교 전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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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반도의 앞에는 시칠리아 섬이 있다. 이 섬의 남동쪽 해안에 있는 시라쿠사 출신으로 유명한 고대 과학자를 들라면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기원전 287년경-기원전 212)를 떠올릴 것이다. 그는 벌거벗은 채 “유레카(Eureka, 찾았다)”를 외치면서 거리를 뛰어다닌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시라쿠사의 히에론 2세(Hieron II of Syracuse) 왕은 한 장인에게 순금을 주어 왕관을 만들게 했다. 완성된 왕관을 받아 무게를 재보니 처음 준 순금과 같았다. 그러나 왕은 장인이 값싼 은을 섞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왕관은 손상하지 않으면서 은을 섞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 과제를 멋지게 해결한 사람이 바로 아르키메데스였다.
왕관을 물에 넣으면 넘치는 물의 양이 바로 왕관의 부피가 된다. 질량을 부피로 나누면 어떤 물질의 밀도가 된다. 즉 순금의 밀도와 왕관의 밀도를 비교하면 왕관의 조작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목욕을 하다가 이 방법을 찾아낸 아르키메데스는 발견의 기쁨에 정신없이 바깥으로 뛰어나갔을 것이다. 우연히 그 방법을 발견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해결하려는 노력 끝에, 고심에 고심을 한 끝에, 노럭의 결과로 얻은 기쁨이었다.
아르키메데스에 대한 이러한 일화는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0년경-120년경)의 서술에서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플루타르코스가 서술한 『마르켈루스 전(Life of Marcellus)』에 의하면, 아르키메데스는 배를 움직이는 복합 도르래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돌 투석기나 쇠로 만든 갈고리 장치와 같은 전쟁 기계를 발명했다. 원과 관계된 수학 문제를 풀다가 로마 병사에게 죽임을 당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아르키메데스의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는 ‘지렛대 법칙’의 발견이다. 그는 “나에게 설 수 있는 지점과 충분히 긴 지렛대를 주면, 지구를 움직이겠다.”"라고 하면서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지렛대와 복합 도르래를 이용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배를 혼자의 힘으로 들어 올렸다. 이러한 원리는 그가 직접 저술한 책인 《평면의 평형에 관하여, On the Equilibrium of Planes》에 나와 있다. 여기에서는 지렛대가 균형을 이루는 조건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우리가 옛날에 사용한 손저울도 이러한 원리가 적용된다.
아르키메데스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오늘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이며 동시에 공학자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그의 업적은 단순한 발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문제를 정의하고 고민했다. 그 해결책을 수학과 과학 법칙에 기반해 설계하여 해결해 냈다. 사후 그의 묘비에는 구와 원기둥이 새겨졌는데, 이것은 그가 전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수학적 연구 주제였다.
아르키메데스를 단순히 물리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로만 보는 것은 절반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르키메데스의 진정한 위대함은 지식의 실용화에 있다. 그는 수학적 원리를 전쟁 방어용 기계, 항해 장치, 수송 장비, 심지어 도시 급수 시스템에까지 적용했다. 말하자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손으로 구현”한 사람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분야가 위기를 맞고 있다. 젊은 세대가 기초과학을 공부하려 들지 않는다.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나 기업체의 지원도 크게 줄었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나무도 흔들리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아르키메데스의 말을 바꾸어 본다.
“우리 젊은이에게 기초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장소와 충분히 긴 지렛대(지원)를 제공하자. 그러면 우리나라는 엄청난 과학기술의 강국이 될 것이다.”
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 춘천교육대학교 전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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