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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김종걸의 플러스에세이 2] 세월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06월 09일
김종걸/ 수필작가

참으로 먼 길이었다.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무심하게 살아온 세월 앞에서 발이 저리고 가슴이 뛰어서다. 걸음도 무거워 초여름 햇살이 역광으로 비추는 교문 앞에서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사는 것이 별것도 아닌 것을 자그마치 50년이란 긴 세월을 건너 찾아왔으니, 학교도 스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낯설었다.

모두가 세월 때문이었다.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기술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탑을 보며, 책가방을 들고 등교했던 교실 앞으로 갔다.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은 반백이 성성하였고, 이마와 눈가에는 주름살을 훈장처럼 달고 서 있었다. 함께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을 길에서 정면으로 마주치거나, 멱살잡이해도 생판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 되어 당황스러웠다.

1975년 3월, 국립oo기계공고에 입학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집안 형편상 입학할 수밖에 없는 나를 직접 교무실로 불러 위로하듯 말했다. “국가에서 처음 세운 학교라 고생스럽겠지만 너한테 꼭 맞는 학교다. 3년 동안 수업료도 면제이고, 전국의 수재들이 다 모인다는 학교라서 괜찮을 것 같아 추천했으니 그리 알라.” “선생님 저…. 저는 수재가 아닌데요.”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인상을 찌푸렸고,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은 놀라서 눈치를 주었다. 그래서 잠깐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다가 냉큼 밖으로 나왔다. 소박하고 순진한 꿈을 가진 나는 가족에게 자부심이 강했고, 시골 동네의 자랑거리였다. 나와 함께 입학했던 친구들 모두 중학교에선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수재들이었다. 당시 인근 지역에선 국립oo기계공고 입학은 큰 자랑거리였다. 특히 동네에서 이장하던 아저씨는 이런 말로 자랑을 했다.

“김씨 가문에 종걸이가 국립oo기계공고에 갔대. 그 학교는 대통령 각하께서 만든 학교라는구먼, ‘김씨 집안에 인물 났어,’ 이제 잘살게 됐네. 종걸이가 졸업만 해봐. 돈 많이 벌어 올 텐데, 무슨 걱정이 있겠나.” 하지만 동창 중에는 형이나 누나의 대학교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학교를 선택한 친구도 있었고, 부친의 사업 실패 등 갖가지 사연들을 안고 입학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꿈과 희망을 품고 입학한 지 5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참 빠르다. 눈 한 번 질끈 감았다 뜬 거 같은데, 세월은 훌쩍 지나갔다. 시간은 쇠털같이 많다는 말도 다 허튼소리다. 아직 삼분의 일도 못 산 거 같은데 구렁이 담 넘듯 육십 고개를 훌쩍 넘겼으니 말이다.

교문을 지나 배관과 실습장을 거쳐 처음 작업복을 착용하고 공부했던 기초 실습장을 찾아보았으나 그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실습장에서 줄(File)을 잡고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며 마치 군대 훈련병처럼 열심히 줄을 갈았다. 이러한 실습은 기초 훈련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무려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참으로 생소하고 신기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시골에서 낫으로 나무하고, 도끼로 나무 패고, 망치로 못 박는 일과 호미 ‧ 괭이 ‧ 삽 등 농기구는 자주 사용해 봤지만, 쇠톱, 줄(File)은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이라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줄(File)을 이용하여 사각형, 삼각형, 오각형 등 다양한 형태의 조각품을 만들 수 있도록 손 감각은 극대화되었다. 하지만 늘 열심히 하면서도 실습실 밖으로 나오면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에잇, 내가 꼭 이걸 해야만 하나? 이렇게 해야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벌써 학교 입학 후, 만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구가 오십 번을 공전하는 기간은 그렇게도 아득했고 무정했다. 게다가 오래된 교정을 품고 있는 대운동장의 정경들은 왠지 더 새로웠다. 교련 시간이면 언제나 목총을 들고 각종 훈련과 총검술을 익히던 곳이라 그런지 더 정겨웠다.

어느덧 해가 기울면서 운동장을 보고 있노라니, 당시 교련 수업을 마치고 나무 밑에서 쉬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사열 연습을 참 많이도 했고, 의장대 출신 선생님이 계셔서 목총을 돌리는 것을 수시로 배웠다. 마치 중요 행사처럼 줄을 맞추어 목총을 돌리며 걷는 모습은 흡사 군 의장대나 다름없었다.

그동안의 아쉬운 기억을 뒤로하고 미끄러지듯 운동장을 빠져나오면서 돌아다본 텅 빈 교정의 풍경은 이상하게도 정지된 화면처럼 오래도록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20년쯤 지나면 가끔 지하 명부에 전입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고, 지상에 남아 있는 자들은 더 늙고 병들어 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추억이란 이름으로 이곳 국립oo기계공고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삶의 행간 행간에 국립oo기계공고를 그리워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이마와 눈가에는 주름살을 훈장처럼 달고 살지만, 세월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 그리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세월은 어김없이 흐르고 또 흐르는 것이기에.
<국립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
<국립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 전경>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그린에세이 작가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공모 우수상 수상.(2021).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2019)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06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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