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에서 ‘품격’과 ‘존중’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나와 신념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최소한의 예의마저 실종된 되었다. 선비의 중후함에 깃들었던 존중의 예를 대신 채운 것은, 법이라는 수단으로 자행되는 인격 도륙과 권력이라는 예리한 칼날로 상대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비정한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 정치가 걸어온 길은 바로 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퇴행의 역사 그 자체였다. 계엄이라는 잔악한 행위로 끝내 몰락한 윤석열 정부 시절, 당시 야당 대표였던 한 정치인을 겨냥해 국가의 수사력이 총동원된 사건은 모두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잔인함 이었다. 드러난 바에 의하면 150명이 넘는 검사가 무모한 수사에 투입되었고, 400회가 넘는 압수수색이 자행되었으며 6만 7천 건이 넘는 문서가 샅샅이 뒤져졌다. 한 개인과 그 주변을 향해 이토록 집요하고 악랄한 수사력이 투입된 것은 우리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이 쌍끌이 거대한 그물로 건져 올린 ‘실체적 범죄 증거’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빈손수사로 정적 죽이기 수사에 불과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과정이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정당한 사법 절차라기보다는,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한 ‘정치적 마녀사냥’에 가까웠음을 방증한다. ‘사법 리스크’라는 프레임으로 상대를 묶어두고 끊임없는 수사와 언론 플레이를 통해 피의사실을 덧씌워서 법치가 아닌 법을 이용한 살인적 폭력이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러한 야만적 행태를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할 정치권의 모습이다. 대선에서 패배하고 이제 막 야당의 간판을 단 젊은 비상대책위원장의 언행은, 우리 정치의 품격의 추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칼날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을 조롱하고, 그 고통마저 무시하는 태도에서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인격적 소양을 찾기도 어렵다. 그것이 과연 그가 배운 정치의 본령인지 일천한 경력의 젊은 정치가 이렇게 염치도 없고 최소한의 품격도 없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친위 쿠테타로 온 국민을 나락으로 빠뜨리고 온갖 모략으로 버티다가 끝내 조기대선으로 권력을 상실한 세력의 젊은 임시대표가, 인수위 기간도 없이 출범하게 된 새 집행부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출범 후 2~3개월간 주어지던 이른바 정치적 유예기간 허니문 기간도 없이 비방과 공격을 일삼아 최소한의 품격마저 저버리고 있으니 심히 안쓰러울 따름이다.
정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어야 한다. 정책으로 경쟁하고 비전으로 설득하며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의 상처를 보듬는 것이 정치 본연의 역할이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말살하려는 증오의 언어 사법 권력을 동원해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퇴행적 행태는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권력을 향한 비루한 욕망의 발현일 뿐이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며 무소불위의 칼날은 언젠가 자신을 향해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쪽이 사법 시스템을 무너뜨리면 다음에는 다른 한쪽이 그 폐허 위에서 더한 야만으로 보복하는 악순환만이 남을 뿐이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라는 뜻으로 칡과 등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의지나 처지, 이해관계 따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을 일으킴을 이르는 말이다. 현재의 정치권이 하고 있는 모양새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언어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치가 품격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정의를 바로 세우고, 정치권은 상대를 향한 인격 모독을 멈추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복원해야 한다. 국민이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 때 바로 정치가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때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유행가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에 여야 정치권이 국민을 위해 서로 협력하여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필부로서 당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