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 고문
|
|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니 좋았던 것이 좋은것이 아니었으며 나쁜것이 결코 나쁜게 아니었습니다. 인생은 자기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며 자기가 한 말과 저지른 일에 대한 응당한 댓가를 치루며 살아가는 것 이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붓을 갖고 있고 그림 그리는 실력이 있다 해도 종이가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아무리 예쁜 얼굴과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더라도 내면이 아름답지 않으면 빛이 날 수 없고, 겉으로 꾸며진 아름다움 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어야합니다.
공자의 아끼는 제자로 시와 예에 통달했던 자하가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시경(詩經)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곱게 웃는 모습에 보조개 예쁘고, 아름다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네. 흰 바탕에 고운 채색 더한 듯 하네’ 이 시구가 무슨 의미입니까?”
공자는 회사후소(繪事後素 : 그림 그리는 일은 하얀 바탕이 있은 후에 할 일이다)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자하가 “형식을 갖추는 예(禮)가 충신(忠信)을 갖춘 후 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 뜻을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하로구나. 이제 비로소 함께 시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라고 했습니다.
동양화에서 하얀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만으로는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禮)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인(仁)의 마음, 내면의 덕성이 중요함으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사자성어는 실속 없는 형식에 빠져 생활에 필요한 예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 됨됨이가 선결되어야 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외모의 아름다움은 우선 시선은 끌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은 곧바로 시선을 끌지는 못하지만 진한 향기처럼 여운이 남아 오래갑니다.
미래를 상상할줄 알아야 힘든 오늘을 참아낼수 있습니다. 현실이 남루하고 보잘 것 없어도 마음은 늘 푸른 창공을 날 수 있습니다. 이런분은 시련이나 역경에 처할수록 격랑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갈수 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눈높이를 낮추어 발 아래만 보다가 구렁텅이에 빠진 경험이 있습니다. 안목을 키우기 위해 지혜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높이 나는 새는 먼 곳을 볼 수 있습니다.오늘의 힘듬은 미래의 추억거리를 뿐 입니다.
잠깐 피었다 지는 나팔꽃 처럼 인생은 짧지만 그 안에는 꼭 반짝이는 순간인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숨어 있습니다. 선택된 사람에게는 축하를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전할수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추구하고 갖춰야 할 진정한 가치입니다.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