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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143

법정(法頂)스님을 기리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05월 07일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
 
부처님!!!
극락행 여권을 발급하고 있는 데가 있다면 세상에서는 무슨 잠꼬대냐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 암흑의 계절 중세가 아니라, 오늘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일입니다. 그것도 푸닥거리나 일삼는 ‘무당절’에서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도 손꼽는 대찰(大刹)들에서 버젓이 백주에 거래되고 있으니 어떻겠습니까? ‘다라니’라는 것을 찍어서 돈을 받고 팔고 있습니다. 야시장도 아닌데 이런 넋두리까지 걸쳐서 “극락으로 가는 차표를 사가시오.” 하고 말입니다."
(1964년 10월 18일)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 절 주지 스님의 생일이라고 했다. 그 스님을 따르는 신도들이 장꾼처럼 모여서 웅성거렸다. 이날을 위해 충성스런 신도들은 백일 전부터 기도를 붙였다는 것이다. 주지께서는 새로 만들어온 값진 옷을 입고 치맛자락에 둘러싸여 희희낙락(喜喜樂樂) 화기 띤 얼굴로 비단 방석 위에 앉아 계셨다.

4월 초파일! 이날은 부처님이 탄생한 날이 아니다. 실달태자(悉達太子)가 자기 엄마한테서 나온, 그러니까 한낱 속인(俗人)의 생일이다. 부처님에게도 굳이 생일이 있어야 한다면, 그날은 성도(成道)한 날이어야 할 것이다. 8만4천 번뇌를 말끔히 털어버리고 ‘지혜의 눈’을 뜨면 바로 그날이라고. 섣달 초여드레! 겨우 ‘마지’나 한 불기 올리는 것으로 소홀히 해치우는 그 성도절(成道節)을 우리는 해마다 보아오고 있다. 사문보다는 왕자의 쪽이 부러워서일까? 아니면 그때는 등이 팔리지 않아서일까?

5월의 훈풍(薰風)을 타고 경향 각지의 사원에서는 바야흐로 축제 기분으로 일색(一色)이다. 얼마짜리 등이 생산코스트와는 상관도 없이 활발히 거래되는 호경기 속에서 ‘빈자(貧者)의 일등(一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얼마짜리 등에 따라 신념이 척도된다면 이보다 더한 착각은 없으리라. 거액을 들여 거리거리에 아치를 세우는 등 예년보다 더 호화로운 행사를 하리라고 야단이다. 아직도 승단은 길을 잃은 채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데, 오늘도 사원의 문전에는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부처님은 자비의 화신. 자비 대상은 물론 중생. 이런 불협화음 속에서 부처님은 과연 탄생할 것인가, 질식할 것인가?
(1966년 5월 29일)

법정, <낡은 옷을 벗어라>

"법정스님
한 시대를 살다간 ‘맑고 향기로운 선지식’
1932년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 81(선두리)에서 우수영에서 태어났다.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와 삶과 죽음에 고뇌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효봉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은 후 통영 미래사,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고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0년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며, 불교계 언론과 유력한 신문에서 죽비 같은 글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1973년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75년 젊은 목숨을 앗아간 제2인혁당 사건을 목격한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아 그해 10월 본래 수행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무소유 사상을 설파하며 자기다운 질서 속에 텅 빈 충만의 시기를 보낸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고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을 피해,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1992년 4월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생명 중심의 세상을 명상하며 홀로 수행 정진했다. 1993년 8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준비 모임’을 발족하여, 1994년 3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첫 대중 강연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대구, 경남, 광주, 대전 등지에서 뜻을 함께 하는 회원들을 결집해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모임’을 이끌었다.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길상화(故김영한) 보살이 7천여 평의 대원각을 시주하여 1997년 12월 14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가 창건됐다. 세속 명리와 번잡함을 싫어했던 스님은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을 실천하였다.

스님은 폐암이 깊어진 뒤에도 침상에서 예불을 거르지 않았으며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며,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씀을 남긴 뒤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에서 원적(세수 78세, 법랍 55세)에 들었다."

-'불교신문' 2019-11-18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05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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