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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전)교수(제6대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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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March), ‘3월’의 어원은 고대 로마의 전쟁의 신 ‘마르스(Mars)’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마르스’는 단순히 전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봄의 시작, 변화의 기점,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도 3월에 있다.
요즘 너무나 많은 뉴스와 정보가 쏟아진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322)의 가르침에서 찾아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기 근대과학이 나오기까지 약 2000년 동안 서구의 철학과 과학을 지배한 지성인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 대한 설명 단계에서 단순한 사변적인 사고를 뛰어넘었다. 이어 그는 관찰과 경험을 중시하는 실증적 태도를 견지했다. 예를 들어 월식 현상을 목격하면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렸다고 하면서 지구의 모양이 둥글다고 주장했다.
고래와 물고기가 다른 점을 찾아 언급했다. 고래는 물고기와 달리 태생이며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는 점을 목격했다(<동물지, Historia Animalium>, 제4권). 아가미가 아니라 허파를 통해 공기를 흡입하며 따뜻한 피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동물지> 제8권). 고래가 어류가 아닌 포유류임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언급은 면밀한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경험적 분석(empirical analysis)”은 현대 과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현대 과학의 처지에서 보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면밀하게 관찰하고,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결론을 내리는 과학적인 방법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필요한 기능이다.
우리 민주 시민은 비판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를 키우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 속에서 그것의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해야만 한다. 여기서 비판적 사고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관점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쪽의 주장만 고집하면 세밀한 관찰이 될 수 없다. 오류와 편견이 앞선다.
뜬금없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한 이유는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도 중요한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에서 ‘니코마코스(Nicomachos)’는 아들의 이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에게 주는 사회적 교훈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철학적이고 실천적인 답을 주고 있다. 2권 6장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탁월한 삶은 극단에 있지 않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용(中庸, The Golden Mean)에 있다."
그가 말한 중용은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고 알려진 <중용>과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의 중간을 뜻했다. 이러한 중용은 개인의 윤리적 덕(德)을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자기 발전과 행복을 위한 실천적 원리를 제공한 것이다.
반면에 자사의 중용은 사회 질서와 조화를 중시하며, 개인이 공동체 속에서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하는 것을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넘어서 자사의 중용을 따라도 좋을 것이다. 개인이 행복하면서 동시에 사회 질서와의 조화를 이루면 더욱 좋기 때문이다.
정치적 극단주의(좌우 이념 대립)를 피하고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지려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그것이 우리의 슬기이며 지혜다.
이면우/ 춘천교육대학교 (전)교수(제6대 총장)/ (사)한국과학사학회 전 회장 /교육학박사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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