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참여 정부의 정치를 보면 정치인이 지켜야할 덕목 중에서 겸손과 자중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지지층에 대한 신의와 존중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권을 가능하게 해준 지지 국민들에 대해서 자신에 대한 지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 진정한 연대세력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통치권자의 모습은 정치인의 자의적인 독선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지 세력들이나 국민들은 신의 없는 통치권자에 대해서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가장 인기 없는 권력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셰익스피어의 사극 중에서 비극성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주는 리챠드 2세를 연상하게 한다.
리챠드 2세는 사촌인 볼링브루크가 모브레이라는 귀족을 역적으로 고발함으로써 생긴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이를 빌미로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사촌을 제거하는데 이용하고자 한다.
볼링부르크는 엄격한 의미에서 리챠드 2세의 정치적 동반자인 근친이요, 주요한 왕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챠드 2세는 자신의 협조자로서 반역에 대해 고발을 한 사촌에게 반역의 피고발자와 함께 임의적으로 추방을 명한다.
왕의 처신으로서 무언가 안 맞는 이야기다.
국가의 안위에 해당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나 검증 없이 떠나라는 것은 통치권자로서 어쩌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양측이 모두 공연한 분란을 일으켜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 당분간 영국사회를 떠나있으라는 유치한 결정인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리챠드는 볼링부르크의 모든 자산을 몰수하여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반란을 해결하기 위한 군비에 사용하겠다고 결정해버린다.
봉건제도하에서 왕은 각 지역의 영주에게 봉토를 내리고, 그들의 충성맹세를 통해서 국가의 근간을 유지한다.
만약에 왕이 영주의 작위나 영토의 권한을 몰수할 때는 그가 저지른 반역이나 불충을 증명해야하고, 이는 다수의 영주나 국민들에 대한 설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합법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느 영주의 권한을 임의적으로 훼손한다면 그 왕은 독선과 독재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리챠드 2세의 독선은 볼링부르크에 대한 동정과 지지를 유발하여, 자신의 지지 세력의 이탈을 가속화시킨다.
그는 아일랜드 원정을 빌미로 과중한 징세를 추진하고, 국가채권을 남발하는 등 국민들의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곤트나 요크, 볼링부르크 등 근친적 지지세력인 왕족에 대한 예우나 배려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경시하고 신의를 깨뜨리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원정길에서 들리는 볼링부르크의 득세소식은 심상치 않다.
벌써 볼링부르크의 추방을 면해달라고 탄원했던 친인척들인 곤트백작, 요오크 백작 등이 속속 볼링부르크 진영에 가담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여론 또한 리챠드에 의한 피해자격인 그에게 기울어져간다.
대부분의 독재자나 독선적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무궁무진한 줄 착각한다.
힘없는 국민들이야 그들의 위협이나 협박이면 고개를 숙이는 무지랭이로 무시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통치자가 신뢰할 만한 자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매우 냉혹하다.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국민들과 지지세력에 대한 통치자적 의무를 선행하지 않는 자는 왕권신수설을 믿었던 그 당시의 시민들마저 쉽게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리챠드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런던으로 가까이 올수록 따르던 추종자들이 이탈함으로써 점점 소수화되고 고립화된다.
그야말로 볼링부르크는 뜨는 해이며, 리챠드는 지는 해다.
뜨는 해처럼 광휘가 드넓게 퍼져가는 볼링부르크에게 귀족들과 시민들이 몰려들고, 지는 해처럼 왜소해져가는 리챠드에게는 왕권을 양도하라는 압력이 드세어진다.
말이 자율적인 양도이지, 리챠드의 머리 위의 왕관을 다수의 지지 여론으로 뺏어다가 전도유망한 후계자에게 주고자 한다.
결국 리챠드는 왕위를 양도하고 런던탑에 갇혀서 빼앗긴 왕권을 두고 저주한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나는 어느 누구의 폐하도 아니다. 나에게는 이름도 없고 작위도 없다. 세례 반에서 받은 그 이름조차도 찬탈 당했다. 아 슬픈 날이로다. 겨울을 겪어도 수십 회를 거듭했으나, 내 이름을 뭐라고 부를지 모르다니......오 눈으로 만든 조롱감의 왕이나 되어서 볼링부르크의 해에 비치어 물방울로 녹아 버렸으면”이라고 자신의 전락한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다.
리챠드는 왕권을 가졌을 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다가 그 것이 사라지자 그 고귀함을 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절대적인 가치를 권력의 힘을 남용함으로써 희화화시키고, 휴지조각처럼 남에게 양도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든 자가 볼링부르크가 아닌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깨어진 거울에 비치는 조각난 자신의 모습에서 미천하게 영락하여 비참하게 자객의 손에 죽을 자신의 운명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군사정권하에서 수많은 비극을 겪었던 우리 국민들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큰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이란 절대로 권력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 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때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너무 쉽게 전락한 리챠드의 비극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