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9-26 오후 06:54:21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자유기고

[웰빙부사의=이규임] 문해력(文解力)과 한자력(漢字力)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01월 03일
 
이규임 / 포천신문 자문위원,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어느 중학교 지리 선생님이 한국 기후 특성을 가르치며 칠판에 “새마을 운동 전만 해도 많은 논이 천수답이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못 지었다”고 썼다. 학생들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수답’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天水畓’이라고 한자를 쓰고 “하늘에서 비가 와야 농사짓는 논이란 뜻”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야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는 “한자만 알려 줘도 문장을 더 잘 이해하더라”라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올해 한글날을 맞아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자 능력과 문해력의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새삼 지적됐다. 고 3학생이 ‘풍력(風力)’을, 중 3이 수도(首都)의 뜻을 몰라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진다. “가로등은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이냐?”거나 “대충돌(大衝突)은 ‘대충 만든 돌[石]’ 아니냐?”고 묻는다. ‘막역(莫逆)한 사이’라고 하면 ‘막연한 사이’를 잘못 쓴 줄 안다.

이런 빈약한 어휘(語彙)로 독해(讀解)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이번 설문에서 일선 교사 92%가 “학생들 문해력이 전보다 떨어진다”고 대답했다. 학생 5명 중 1명은 남의 도움 없이는 교과서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교사들은 시험문제를 내면서 아이들이 잘 풀까 걱정하기 전에 질문이나 이해할까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라고도 했다. 다만 청년 세대의 문해력 자체가 낮다고 볼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지금 청소년과 20~30세대는 어려서부터 외국어를 모국어(母國語) 못지않게 접하며 자란 국제화 세대다. 성경을 읽다가 한자어 앞에서 막히면 부모 세대는 사전을 뒤졌지만 요즘 청년들은 인터넷에서 영어 문장을 찾아 읽고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다. ‘이성 교제’라 하면 못 알아듣고 ‘데이트’라 해야 고개를 끄덕인다. 문장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말 70%가 한자어(漢字語)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해력의 근본 원인은 한자 이해력인 것이다.

교사들은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어휘력을 늘리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한다. 특히 고차원의 사고(思考)와 관련된 추상적인 개념어(槪念語)는 한자를 모르고선 이해할 수 없다. 영어권 국가들이 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은 한자를 모르면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더욱이 요즘은 책을 읽지 않으니 문맥상으로 의미를 추론(推論)해 익히지도 못한다. 

실제 교사들이 문해력이 낮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수학 문제가 길어지면 이해하지 못하고, 영어를 한글로 바꿔 줘도 뜻을 모른다.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일까. 성인 880여 명을 대상으로 복약지도서(服藥指導書) 임대차계약서(賃貸借契約書) 등을 제시한 문해력 테스트를 했더니 평균 점수가 54점이었다는 조사도 있다.

청소년은 한자어가, 어르신들은 외국어가 낯설다. 남발되는 외국어는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최근 ‘Pick up’(가져가는 곳) ‘Counter’(계산대) 등 한글 안내 없이 온통 영어만 쓰인 햄버거 매장이 ‘노(NO); 노인존’이라며 논란이 됐다. 번역 없이 영어를 그대로 옮긴 신기술 용어와 ‘최애템’(최고로 아끼는 아이템) ‘킹받네’(열받네) 같이 영어와 한글을 섞은 신조어가 많이 쓰이는 것도 어르신들의 문해력을 떨어뜨린다.

젊은 세대는 말 그대로 문해력이, 노인 세대는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 같은 이른바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고 이용하는 데 문해력이 문제다. 고도의 압축 성장에 따른 세대 간 단절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문해력 수준이 높을수록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뿐 아니라 건강 상태가 좋고, 지역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한단다. 문해력은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는 자산인 셈이다. 문해력에 앞서 한자를 많이 익혀둬야 하는 이유이다.

이규임 / 포천신문 자문위원,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01월 03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생활상식
가장 많이 본 뉴스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 포천시 해룡로 130-38 (동교동)
발행인·편집인 : 김현영, 편집인 강신옥 / mail: ipcs21@hanmail.net / Tel: 031-542-1506~7 / Fax : 031-542-111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아50080 / 등록일 : 2009년 6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영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