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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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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이 어둑해서 저 언덕 다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는 물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낮과 밤의 경계에 있는 어스름 황혼이나 이른 새벽을 의미하죠.
어디 늑대와 개뿐이겠습니까? 요즘 같은 세상엔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어두컴컴한 골목길 저쪽에서 낯선 사람이 걸어오면 머리카락이 쭈삣 섭니다. 그가 무서운 늑대인지, 사랑스러운 개인지 분간하느라 눈과 머리가 바빠집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랍비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물었습니다. “밤이 끝나고 날이 밝는 정확한 순간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느냐?” “그야 양떼 사이에서 개를 가려낼 수 있을 때이죠.”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다른 제자는 “아닙니다. 멀리서도 무화과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구별할 수 있어야 날이 밝은 것입니다.”랍비는 “둘 다 맞지않다.” “그럼, 정답이 무엇인가요?” 제자들이 묻자 랍비가 말했습니다. “한 낮선이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가 그를 형제로 받아들여 모든 갈등이 소멸되는 순간이 바로 밤이 끝나고 날이 밝는 순간이니라.”
그렇습니다. 새벽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날이 밝을지라도 나에게 불신과 미움이 가득하다면 마음은 어둠입니다. 그 어둠을 걷어내지 못하면 동이 터도 밝은 새벽은 오지 않습니다. '늑대와 개의 시간'이 도래해도 '인간의 시간'은 오지 않습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은 어진 사람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맹자에 나오는 이 표현은 모든 사람에게 어질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는 뜻과 더불어 인(仁)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예전에는 천하를 호령하던 진(晉)나라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주위 나라들에게 땅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과인은 이를 수치로 여겨 그들을 물리치고자 합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왕께서 어진 정치를 베푼다면 이 땅의 모든 장정들은 몽둥이 밖에 든 것이 없다 할지라도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적군을 물리칠 것입니다. 옛말에 ‘어진 사람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사는 세상 또한 이와 같습니다.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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