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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임 / 포천신문 자문위원,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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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대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에 앞서 그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은 광서제(光緖帝·1871~1908)다. 그는 기울어가는 왕조의 명운을 되살리고자 변법유신(變法維新)의 개혁까지 꿈꿨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쓰디쓴 운명을 맞는다. 꿈을 펼칠 만한 현실적 방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품성을 두고 흔히 지적하는 말이 있다. “뜻은 거창하나 재주는 부족하다(志大才疏)”는 풍자(諷刺)다. 중국인들은 이를 ‘대의(大意)’라고도 적는다. 나아가 조심대의(粗心大意)라는 성어로도 표현한다. 꼼꼼하지 않고(粗心) 매사에 데면데면하거나 신중치 못한(大意) 사람의 성격을 이른다. 뜻만 거창해 디테일을 죄다 놓치는 경우다.
광서제는 자신의 은인이자 정치적 최대 자산인 서태후(西太后)와 반목하면서 스스로 입지를 크게 좁혔다. 이어 서태후의 안배로 맞이한 황후(皇后)와도 자주 다퉈 고립을 부른다. 그가 신뢰했던 이들은 변법의 이론 토대를 제공한 학자 그룹이었다.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같은 이론가들이다. 학식이 뛰어났을지 몰라도 정치적인 역량은 부족했다.
이들만을 신뢰한 광서제는 결국 서태후에 의해 감금당하고 그녀가 죽기 하루 전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의리와 충절로 유명한 ‘삼국연의’ 주역 관우(關羽)도 이 점에서 큰 비판을 받는 사람이다. 눈만 높고 손은 더딘 안고수비(眼高手卑)의 본보기다.
‘편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고, 생각이 들면 대비하고, 대비하면 화를 면한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대신 위강이 왕 도공에게 조언해 후세에 널리 퍼진 고사성어다. 당시 진나라와 초(楚)나라는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다. 도공은 초나라와 맞서기 전에 등 뒤 북방의 부족 융적(戎狄)을 토벌하려 했지만 위강이 말렸다.
융적을 치러 나간 사이 초나라가 쳐들어올 가능성이 있으니 차라리 융적을 잘 달래어 화친하자는 것이다. 도공이 이를 받아들였고 위강은 융적과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어 진나라는 두 강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鄭)나라를 쳐서 항복시키고 위세를 떨쳤다.
포부가 거창하다고 일이 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의리와 충절로 유명한 ‘삼국연의’ 주역 관우(關羽)도 이 점에서 큰 비판을 받는 사람이다. ‘조심대의’의 전형으로 꼽히며 교만함과 부주의로 인해 촉한(蜀漢)의 핵심 거점인 형주(荊州)를 내주다시피 한 인물이다. ‘교활한 토끼는 자기가 숨을 3개의 굴을 파놓는다’고 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티격태격 싸울 때가 아니다. 너 죽고 나 살자고 적대시(敵對視)하고 불지를 때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價値)다. 합심(合心)하여 대비해도 장담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6·25전쟁 당시와 같은 희생과 고통을 막으려면 동북아시아의 요동치는 정세에 촉각(觸覺)을 곤두세우면서 예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對備)해야 한다.
북한과 주변국의 도발에 휘둘리지 않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를 지키려면 첨단 무기를 비롯한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싸울 의지(意志)를 갖춰야 한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확장 억제력 강화를 위해 한미 동맹(同盟)을 튼튼히 하고 실전 훈련(訓練)을 반복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 이 사태(事態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절대 소홀이 해서는 안 된다.
안거사위(安居思危)라 했다. 평안한 삶을 누릴 때 위험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 격양가(擊壤歌)에 젖어 있을 정도로 평안한가. 아니다. 언제 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덥쳐올지 아무도 모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 한반도에 파장을 미치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며 변법유신과 유비무환을 화두(話頭)로 삼은 이유이다.
이규임 / 포천신문 자문위원,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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