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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희=칼럼]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포에니 전쟁에서 배워보자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11월 15일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역사를 공부해 보면 그 어떤 강대국도 외교와 동맹 없는 자주국방은 불가능 했다. 서양의 제갈공명이라는 한니발은 천재 명장이였다. 그의 용병(用兵) 앞에 로마군은 연전연패 했다. 그의 외교 전술 앞에 로마의 동맹체제는 무너졌다. 이탈리아 제2의 도시 카푸아는 로마를 배신했고 시칠리아의 맹주 시라쿠사는 한니발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한니발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한니발의 약점이 아니라 카르타고라는 한니발의 국가의 약점이었다. 카르타고의 통치기구인 원로원들의 한니발의 성공을 시기하는 간신들의 모함과 ,견제로 한니발과 같은 명장도 국가를 위해 큰 뜻을 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로마와 싸우고 있었음에도 하나로 뭉치지 못했고, 언제나 당파심이 애국심을 이겼고, 개인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보다 중요했다. 한니발이 아무리 천재 명장이라 해도 개인의 힘 만으로 로마 전체와 싸울 수는 없었다.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는 한니발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그의 근거지인 아베리아반도를 잠식해 들어갔다. 한니발에게는 원군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오지 않았다. 점차 한니발은 수세에 몰렸고,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이 묶였다.

기원전 207년, 드디어 기다리던 원군이 동생 히스두루발이 사령관이 되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왔다. 한니발은 용기 백배하여 북상했다. 동생과 만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스키피오의 로마군이 한니발에게 가던 하스두루발의 밀서를 가로 챘고, 비극은 시작되었다. 의도를 간파당한 하스두루발은 메타우로스 강변에서 로마군의 기습을 받았다. 군대는 전멸했고 사령관은 명예롭게 전사를 선택했다.

로마군은 동생의 잘린 머리를 형의 진지로 던졌다.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둔 10년만의 재회였다. 한니발은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스키피오의 군대가 아프리카에 도착하자 카르타고 역시 종말을 예감했고, 한니발에게는 귀환 명령이 내려졌다. 크로토네에 머물고 있던 한니발에게 명령이 전해졌을 때, 한니발은 분통이 터져 이를 갈고, 겨우 눈물을 참아냈다.

그도 결국에는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니발은 자신의 말을 죽이고, 배를 탔다. 이탈리아를 떠나기에 앞서 한니발은 카포 콜론나의 헤라 신전에 자신의 업적을 기록한 동판을 남겼다. 그는 떠나는 배 위에서 자신의 업적을 품은 헤라 신전을 바라 봤다.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어쨌든 그는 실패했다. 로마는 살아 남았고 더욱 강해졌다.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쪽은 한니발과 카르타고였다.

한니발은 이베리아에서 이탈리아로 갔고, 스키피오는 이탈리아에서 아베리아로 갔다. 각자의 어깨 위에 조국의 운명과 지중해의 패권이란 짐을 진 채였다. 이제 두 사나이는 북아프리카 자마에서 운명처럼 마주했다. 역사 학자의 표현대로 "그들의 시대뿐 아니라, 모든 앞선 시대의 기록을 살펴 보아도 가장 위대한 두 영웅" 의 격돌이었다.

승리는 스키피오의 몫이었다. 그의 전술이 좀 더 유연했고, 그의 부대가 훨씬 강인했기 때문이다. 스키피오는 관대한 강화 조건을 제시했고, 한니발은 받아 들였다. 사실상 포에니 전쟁의 종말이었다. 먼 훗날의 3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149년~기원전 146년)은 로마의 억지스러운 시비와 카르타고의 절망스러운 저항에 불과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승자는 거대한 제국으로 도약했고, 패자는 일개 상업 도시로 전락했다.

국가와 국민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당파심이 애국심을 이기고, 개인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보다 중요한 나라가 어떻게 돼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권을 보면서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예외 없는 역사, 그래서 더욱 무섭다.

주한미군 철수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자들이여 이 역사를 보아라. 그 어떤 강대국도 외교와 동맹 없는 자주국방은 불가능하다는 역사의 교훈을 배우기 바란다.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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