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재희] 건강을 해치는 담배, 이제는 책임을 요구해야

	김재희/ 대진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조금씩 단풍이 붉게 물들고 낙엽이 거리를 장식하는 가을의 어느 날. 길모퉁이에서 눈치를 보며 담배를 태우는 흡연자와 그 주변을 지나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 행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여기서 담배를 피울 생각을 하지?” 나도 모르게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보며, 문득 담배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어른들은 집안에서 담배를 즐기셨다. 집안 어디에나 재떨이가 있었고 줄곧 뿌연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버스와 택시, 심지어 기차 객실에도 재떨이가 있었고 흡연자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흡연을 즐겼다. 주위에서도 이를 단순히 개인 기호로 치부할 뿐, 지금의 나 같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불과 30여 년 전이다.

그 사이 애연(愛煙)가로 미화되었던 흡연(吸煙)자들은 집안, 버스와 택시, 기차에서 쫓겨나 흡연부스라는 작은 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흡연은 더 이상 개인 기호가 아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담배의 해악이 널리 알려지고 그 심각성의 우리 사회가 공감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담배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매년 8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만 명이 고통받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발행한 ‘담배 폐해 통합보고서 2022’에 따르면 ‘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직접흡연 사망자 수는 남성 50,942명, 여성 7,094명으로 총 58,036명에 이른다고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 담배는 신체 내 거의 모든 기관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암 발생의 가장 확실한 원인이며, 심장질환, 폐질환, 안질환, 당뇨 등을 포함한 다수 질병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 이런 흡연질환은 막대한 비용으로 이어져 작년 한해 건강보혐료에서 3조 2,591억원이 지출되었다. 10년 전 1조7천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해볼 때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고 하겠다.

아쉽게도 이처럼 매년 수만 명의 사망자와 막대한 치료비용을 발생시키는 담배로 인한 폐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으며,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책임도 부담도 오롯이 흡연자 개인과 국민의 몫일 뿐이다.

담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기호제품에서 유해제품으로 변했어도, 정작 담배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담배제조사들에게 일부라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담배회사를 상대로 하는 개인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3건 있었으나,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 담배사업법이 헌법상 보장된 보건권, 행복추구권, 생명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기한 헌법소원도 기각되었다.

그러나 해외 상황은 다르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담배회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03년에 채택된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따라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3년 10월에 담배 품목별 유해성분 정보를 공개토록 하는 ‘담배의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되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적정한 피해보상 체계는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지만 지난 ‘14년 4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제조사들을 상대로 약 533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개인이 아닌 공기관에서 제기한 최초의 소송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담배회사에 흡연폐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겠다는 취지였다.

1심 판결에서 공단의 청구가 기각되었고, 바로 항소를 제기하여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난한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공단의 소송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공단의 담배소송이 이슈화 되면서 담배의 해악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 심각성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게 되었다. 담배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변화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재까지 양측의 치열한 변론 공방이 계속되고 있지만, 공단의 담배소송이 반드시 승소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흡연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담배제조사들은 이미 전자담배를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담배제품으로 무장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기존 흡연자들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 상당수가 전자담배에 중독되어 병 들어가고 있다.

그간 기호제품에서 유해제품으로 담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변했다면, 이제는 다시 변해야 한다. 그 유해제품을 생산하는 담배제조사 또한 마땅한 책임이 있음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책임에 따른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

김재희/ 대진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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