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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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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들이 모두 분가하여 떠나간 빨간벽돌집은 여름에 살던 제비가 비워두고 떠난 제비집마냥 황량합니다. 아이들 육개장 좋아한다며 마당 한켠에서 토란대를 다듬는 아내를 꼬득여 농 수산물 도매시장을 나갔습니다.
무엇을 구매할 목적보다 무슨일을 하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수 없을때 또는 사는 게 막막할 때는 늘 시장을 찾아갑니다. 장바구니 하나 들고서 털레털레 찾아가는 시장은 오래된 큰 터널 같지만 온갖 싱싱한 것들과 맛깔스러운 냄새와 부대끼는 소란과 억척스러운 활력이, 터질 듯이 꽉 들어차 있는 곳입니다.
채소 장수, 과일 장수, 생선 장수, 호떡 장수, 생필품 장수들이 가게마다 평생 팔아온 것을 알알이 겹겹이 늘어놓았습니다.
옛날 어머니 손에 끌려가는 어린애 처럼 가지각색 맛깔스러운 것들에 정신이 팔려서 요즘들어 유독 빨리가는 시간이 휙 지나갑니다. 어렸을 땐 시장 상인을 부르는 ‘장수’라는 말을 이순신장군 처럼 무지막지하게 힘이 센 ‘장수’인 줄만 알았습니다. 배추 단을 척척 이고, 생선 궤짝을 착착 쌓고, 능숙하게 소나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물건을 파는 '장수'들은 어린나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였습니다.
이 '장수'들은 어찌나 수완도 좋은지. 늘 내 마음을 다짜고짜 움켜잡습니다. "요즘은 꽃게 이게 제철이야. 오늘은 이 낙지가 싱싱해. 나는 맛이 좋아 평생 이 과수원의 사과만 팔았어." 그중에 빛나고 좋은 것들만 골라 장바구니에 한 움큼씩 넣습니다.
텅 비었던 장바구니가 어느새 둥글고 오돌토돌하고 싱싱하고 좋운 것들로 묵직해질 때 쯤에는, 앞이 막혀 더이상 전진하지 못한 일이나 시름시름 앓던 마음 같은 건 모두 잊어 버리곤합니다.
예전에는 칭찬받고 싶을 때도 시장에 갔었습니다. 해동검도복을 입은 두녀석을 데리고 시장에 가면 "아들내미만 둘이야? 쌍둥이 아니지? 이만치 키우느라 고생했네. 참말로 장하네." 등등 쫄래쫄래 나를 따라오는 아이들 뒤로 쫄래쫄래 시장상인들의 칭찬들이 따라오곤 했습니다.당시에는 그 칭찬에 어찌나 우쭐했는지 모릅니다.
시장본 물건들을 차에 싣고 단골 국밥집에 들릅니다. 육개장 3인분에 1만5000원. 요즘 물가엔 말도 안 되게 싼 데다 푸짐하고 맛있어서 든든한 보양음식이였습니다. 육개장할머니가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한소끔 식혀둔 육개장을 뚝배기가 넘치게 퍼 줍니다.
뚫어져라 구경하는 아이들을 보더니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어유, 고생했네. 나도 아들을 둘 키웠는데 힘에 부쳐도 크면은 든든해. 뚝뚝해서 재미는 좀 없지만.” 아드님 나이를 묻자 첫째가 58세 라고 하십니다. 어림잡아도 할머닌 70대 후반일 터. 전혀 그 연세로 안 보인다니까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터뜨리십니다.
“내가 여기서 50년을 국밥 장사로만 애들 키워 장가보냈어. 근데 만날 장사한다고 애들을 못 봐서 사이가 살갑지가 않아. 평생 미안하지. 시간이 없어도 일부러라도 아이들하고 시간 많이 보내. 언제 다 키우나 싶어도 눈 깜짝할 새 쑥쑥 커선 모두 훌쩍 떠나버린다. 그냥 사랑만 줘. 그럼돼.” 그 할머니는 점쟁이였습니다.
그때 아이들 싣고 다니던 프라이드 5도어는 아직도 나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데 자녀들은 모두 둥지를 떠났습니다.
중년의 가을날하루는 추억과 함께 이렇게 쓱 지나갑니다.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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