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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96

바른 월다잉(well-dying)이란?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5월 20일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참 말하기 어려웠던말이 이 부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꼭한번은 말씀 드려야하는 부제여서 가정의 달이 가기전에 말씀드리려합니다. 가는 봄을 따라 요즘들어 이승을 하직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면, 대개가 누가 죽었다는 부고입니다.이번주에도 형뻘 되는 분이 돌아가셔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다녀왔습니다. 글을 준비하고 있던터라 자세히 보았습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엄청 밀려 있었습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라는 표시가 뜨고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졌습니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소각에서 냉각까지 1시간 30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어드는걸로 보아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을 관리하는 절차도 예전보다 세련되었습니다.

'냉각 완료'되면 흰 뼛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분이 한 되 반 되어 보였습니다.직원들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유족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면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갑니다. 원통하게 비명횡사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도 않습니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청소년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상을 당해도 스스로 "우리는 호상(好喪)입니다" 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습니다.

부연하자면, 이 세상에 기쁜 죽음(好喪)은 없습니다. 뼛가루는 흰 분말로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런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물체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습니다. 뼛가루의 침묵은 완강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습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언어도단은 인간 생명의 종말로서 합당했으며 차라리 편안해 보였습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단한번도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화장장에 동행해서 다녀온 날에는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합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우리는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어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입니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닌 숙명인 것입니다.

뼛가루를 보니 일상생활하듯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나눠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은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가볍게 가기 위해서 미리 정리해놓을 일이 있습니다.

내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습니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였는데 이제야 보이기 시작합니다.요즘들어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버립니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냅니다.

나는 이제 체력적으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하니 그동안 사모은 등산 장비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나머지는 버렸습니다. 책을 버리기는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조금 슬프기도합니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이며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습니다.

유언을 하기는 많이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일상적인 걸로 하고 싶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먼저간다. 부족한 애비여서 미안하다. 여보 먼저가서 기다릴께.' 정도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돌면서 평생을 사셨는데,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미안허다!를 남기셨습니다.

한 생애가 4음절로 선명히 요약되었습니다. 후회와 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은 좋은 유언이 아닌것 같습니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고, 대책 없이 슬프고 허허로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합니다. 의술의 목표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닙니다.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인도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합니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합니다.

가볍게 죽고, 부담없이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는 관습이 필요합니다. 장례절차가 단순해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연명의향서 작성자가 최근 22만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병세가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 등으로 단순히 임종을 늦추는 시술은 사양하겠다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은 화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닐까 합니다.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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