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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희=칼럼]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잊지말자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8월 21일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고 국가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잊지 말고 끊임 없이 되새기고 준비해야 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주사파로 부터 목숨을 바쳐 국가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애국심이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자신이 없으면 정치를 떠나야 한다. 정치인이 필요한것은 국가가 위급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위협 받을때 앞장서서 그들과 싸우라고 많은 월급과 대우를 하며 그들을 뽑은 것인데 목숨이 아까워 국가와 국민을 배신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그들이 왜 필요한가.

실력도 부족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는 정치인은 다른 직업을 택하고 평범하게 살면된다. 지금 국가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흔연히 목숨을 바칠 애국심과 능력과 도덕성으로 무장된 인재들이 광화문에는 많은데 그들은 국가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를 얻지 못해 가슴을 치고 있다.

역사를 되세겨 보자.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시대에 대부분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약소국들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일본은 식민지가 되지 않고 근대 국가로 성장했다.

지난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 매슈 페리(Matthew Perry) 제독이 무력을 앞세워 일본의 개항을 요구했고, 일본은 1854년 미일화친조약에 이어 1858년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러시아·네덜란드·프랑스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이때 체결된 조약은 최혜국 대우, 매우 낮은 관세 등이 포함된 불평등 조약이어서 일본 국내의 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에 일본은 1867년 천황에게 권력을 반납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단행했고, 1868년 삼권 분립을 기초로 한 천황 중심의 지배 체제를 확립하는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며 대응했다. 메이지 정부는 먼저 폐번치현(廢藩置縣)을 단행해 봉건제를 폐지하고 직접 지방을 관리할 수 있게 했고, 지조개정(地租改正)의 시행으로 납세하는 사람을 토지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측정된 지가(地價, 토지 가격)의 3%를 세금으로 납부하게 했다.

폐번치현과 지조개정으로 메이지 정부의 통치권은 강화됐고 세수도 대폭 늘었다. 또한 아동의 소학교 4년 의무교육 및 소학교-중학교-대학교의 체계를 마련한 학제 개혁, 신분에 상관없이 만 20세 이상의 남성을 2년 동안 군에 복무하게 하는 징병령 등 일련의 개혁과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구미(歐美, 유럽과 미국) 근대국가를 모델로, 관주도(官主導)의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력 강화를 추진해 일본은 강력한 근대 국가로 성장했던 것이다.

일본이 나라를 개혁하며 발전 시킬 때 우리나라는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없다. 조선은 이런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19세기부터 시작된 시기,모함,견제에 능한 애국심 없는 간신들의 세도정치로 기본적인 국가 기능마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으로 세도정치의 모순은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백해무익한 천주교 탄압으로 쓸데 없이 서구 열강의 침략을 초래했고, 구미를 배우려고 않고 오랑케라고 배척 하는 위정척사(衞正斥邪)운동 등 국제정세에 너무 무식하고 어두웠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소국 침략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당시는 최소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을 물리칠 정도의 군사력과 경제력, 외교력 등의 국력이 있어야 국가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 냉혹한 현실이었다. 천주교 탄압과 쇄국정책으로는 절대로 강대국들의 침략을 막을 수 없음을 당시 흥선대원군과 고종은 알지 못했거나 너무 늦게 깨달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런 가정을 해 본다.

최소한 당시 흥선대원군과 고종, 민비가 추악한 권력 투쟁을 하지 않고 이런 국제정세의 냉혹한 현실을 깨닫고 천주교를 탄압하지 않아 서구 열강에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아쉬움과, 안으로는 여러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하여 군사력과 경제력, 외교력 등의 국력을 신장시켰다면 경술국치라는 치욕의 역사는 절대 없었을 것이다.

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조선은 태국과 같은 중립적 완충지대로서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고종이 너무 무능했고 정치권이 지금의 모 정당처럼 애국심과 희생정신이 너무 없었기에 경술국치를 당해야 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주사파를 막고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윤석열 대통령을 지킬곳은 광화문 애국세력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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