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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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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겸손보다 더 큰 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만은 내가 알고있는 많은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들지만, 겸손은 적은 지식으로도 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지식보다 겸손이 낫고, 겸손한 침묵보다는 행동하는 양심이 낫다고 했습니다. 머리에 지식이 있다하여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은 교만의 사치요, 지식으로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서 말하는 것은 겸손의 저축입니다.
오만한 마음에는 더 이상 채울 것이 없으나 겸손이라는 그릇은 늘 비어 있어서 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으로 내려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올라간 것입니다.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70년대초 경영난을 겪고 있는 어느 사립학교에 한 부자가 찾아 왔습니다. 학교 마당 한구석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페인트공에게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그 페인트공은 교장실 위치를 친절히 가르쳐 주며 한 시간쯤 후에 교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일러주었습니다.
그 부자가 한 시간 후에 교장실을 찾아 갔더니,비록 옷은 바꿔 입었지만 분명히 페인트공이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장에게 학교에 긴히 필요한 금액을 자세히 묻고 돌아갔고 얼마 후 그 금액을 기부금으로 보내왔습니다.
교장이면서도 작업복을 입고 허드렛일을 하는 교장의 겸손에 감동이 되었기 때문이였습니다. 이런 성품과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삶의 자세를 우리는 겸손이라 부릅니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을지문덕장군이라고 하면 우리 역사의 이름난 장군으로 초등학교 학생들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재상이며 장군으로 유명한 그가 살수에서 수나라의 백만대군을 물리치고 대승하여 평양으로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왔을때 영양왕은 친히 성밖까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왕은 친히 꽃가지를 그의 투구에 꽂아 주며 금은보화를 하사했습니다. 신하로서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을지문덕 장군은 그와 같은 영광을 사양하고 왕 앞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하의 귀중한 백성이요, 또 백성들의 소중한 아들들이며, 남편인 고구려의 병사들을 수없이 전장에서 잃고 얻은 승리를 나의 공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이 살수대첩의 진정한 영웅들은 여기살아서 둘아 온 저 을지문덕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는 산과 들에서 산화한 뒤 돌아오지 못한 그 용사들의 것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은 평양에 돌아오는 즉시로 왕에게 하직인사를 드리고 고향인 증산으로 돌아가 베옷을 입고 남은 여생을 근신하면서 지내 겸손의 본을 보였다고 합니다.
고요한 호수의 물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장 높은 물체가 가장 낮게 투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나무일수록 더 낮게 비칩니다. 제가 존경하는 김수환추기경님은 살아계실때 겸손을 이렇게 비유하셨습니다.
"꽃다운 얼굴은 한철에 불과하나 꽃다운 마음은 일생을 지지 않네. 장미꽃 백 송이는 일주일이면 시들지만, 겸손의 마음꽃 한 송이는 백년의 향기를 내뿜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겸손'을 존경합니다.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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