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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김남영] 세상사는 이야기-㉚

현대인에게 포기는 기회입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3월 06일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우리는 보릿고개로 지칭되는 집념과 인내의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농경 사회를 거쳐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성공과 시스템의 안착에는 부모 세대의 ‘인내의 지분’이 녹아있는 세대입니다. 인내를 연료로 우리는 지난 삶을 살아왔지만, 언제부턴가 똑똑해진 개인들은 ‘인내의 가성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실과 끈기는 과연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가고 있는지에 회의를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혹시 낯선 선택지로 안내하는 ‘리스크 테이크’가 두려워, 우리는 관성에 따라 ‘가짜 성실’과 ‘억지 끈기’로 제자리를 맴돌며 자신을 학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가장 처음 포기의 신세계를 알게 해준것은 직장에서의 승진이였습니다. 내가 정의한 포기는 좀 더 자발적인 것 이였습니다. 삶에서 불필요한 것, 못하는 걸 빼는 행위를 저는 ‘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알게된것이 ’큇 QUIT’이라는 말인데 어떤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만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로를 바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내 없음이나 조급함 또는 변덕스러운 충동과는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충동적으로 무슨일을 그만두는 것은 선택의 기준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가치’에 있지 않습니다. 쉽게 흥미를 잃거나 게으른 ‘기질’ 탓이죠. 하지만 ‘큇’은 최적의 의사결정 스킬입니다. 그만두는 것으로 얻어진 시간과 노력을 더욱 가치 있는 일에 활용하는 적극적 행위입니다. 이처럼 무엇으로부터의 ’끊어내기’는 더 나은 일에 집중하기 위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일종의 정리 기술입니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만두는 결정을 ‘제때 제대로’ 못한다는 말이구요.

결정시간은 에베레스트산 정상 바로 밑까지 올라갔을 때처럼, 목표 달성이 눈앞에 보일 때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불과 90m 남겨놓고도, 반환시간을 지키기 위해 베이스캠프로 하산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는 ‘그만두는 것도 옳은 선택’이라는 강력한 학습 효과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비전 없는 직장에 계속 머물거나, 서로를 갉아먹는 인간관계, 손해만 보는 사업에 집착하게 되는것은이제 그만 해야 합니다. 정상을 찍어도 하산하는 도중에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한 예로 에베레스트 등반사고의 80%가 하산할때 일어나는 사고입니다.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불만족 스러운 직장 생활을 이어갑니다.

혼자 화를 삭이며 이별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다보면 자본은 고갈되고 채무만 남게 됩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돌이킬 수 있는 반환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에 이르면 그만 두는것도 성공으로의 터닝포인트가 될수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포기의 시점’을 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정확히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례로 택시 기사 2,000명의 운행일지를 분석한 결과 기사들은 손님이 많을 때 너무 일찍 운행을 중지하고, 없을 때 너무 오래 버티는 패턴 때문에 8~15% 비율로 손님을 놓쳤습니다.그럼에도 불안할 때 버티는 습관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너무 오래 버티거나 너무 빨리 그만두는 실수를 자주 저지릅니다.

그만둘까, 아니면 계속할까는 사실 심리전입니다. 어느 사회학자가 어려운 선택 상황에서 ‘그만둘까’와 ‘계속할까’를 결정한 사람들의 만족도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그만둔 사람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그 학자가 말하는 핵심은 이겁니다. 비슷한 비중으로 고민될 때는 그만두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오랜 고민 후 이직이나 이혼, 이별, 이사를 결심하고 실행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긴 터널처럼 끝없는 고민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인지, 실제로 새롭게 다가온 기회에 대한 만족감인지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지만 충동적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그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왜 좀 더 일찍 그만두지 않았을까?” 사회학자의 말대로 우리는 정말 너무 오래 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왜 그토록 그만두는 결정을 힘들어할까요? 저 또한 매 순간 그만두는 것의 리스크를 가정하고 감당하는 것이 힘들어서 익숙함에 안주해온 사람 중 한 명입니다만,우리는 ‘중단’ 혹은 ‘포기’라는 단어에 패배감을 떠올립니다.

몸과 마음이 부서져도 스스로 끝내는 건 못난 짓이라는 집단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니까요. 그만두기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부정적인 범주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현대인은 불행한 결혼, 탈진한 직장 생활, 실패한 사회인의 시간이 이어지죠. 타인에게 받을 비난을 상상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면서요.

우리의 본성이 쉽게 그만두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면, 적어도 ‘그만두기’와 ‘계속하기’에 대한 기댓값이라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택의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는 건 더 혼란스럽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려면 중단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우리는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는 말, 자주 그만두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은 쉽지만 결정까지는 엄청난 고민이 필요합니다.

중단 기준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손실이 발생하기 전에,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떠밀려서 그만두거나 거대한 손실을 떠안을 때 그만두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그만두기가 아니라 상처뿐인 끝이자 종결’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험상 우유부단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기 불신도 깊어집니다. 견디는 나에 대한 대견함보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 버티는 나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 자아 존중감마저 곤두박질 쳐 집니다.

과거에 비해 더 똑똑해진 우리가 투입된 시간 자본 에너지를 비교하는 일에는 왜 그토록 서투를까요?뭔가를 그만두려고 했을 때, 혹은 포기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위로와 용기를 주려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절실한 사람은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을 해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포기의 본질이 ‘탐색과 확장’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람이 가장은 이득이 되는 사람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가슴 아픈 말을 해줄 친구를 찾으세요”라고 했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조언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부자지간에도 ‘그만하세요!’라는 조언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분명한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만하라’는 설득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김남영 포천신문 운영위원장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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