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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희 칼럼] 역사(歷史)와 사필(史筆)이 두렵지 아니한가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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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 정치권을 어떻게 기록할까?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지만 결국에는 부당한 권력의 힘에 의해서도 왜곡되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돼 왔다.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역사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전 세계 각국의 권력자들은 역사를 두려워 했고 지금도 두려워 하고 있다.

옛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바른 역사의 기록을 위해 우리 선조들과 옛 사관들이 얼마나 큰 역경을 이겨냈는지 알 수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일이다. 당시의 개혁 세력이었던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려는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사관 채세영은 재빨리 궁궐로 뛰어 들어갔다. 사관으로서 당시의 벌어진 일들을 사실대로 기록해 역사에 남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조광조 일파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 남곤 일파가 대세를 잡고 임금의 명령을 대행하는 승지를 시켜서 사관 채세영의 붓을 빼앗고 사필을 왜곡하려고 했다. 이에 사관 채세영은 그 붓을 다시 빼앗아 잡고서 큰 소리로 “사관의 붓은 임금님도 못 뺏는다”라며 임금 앞에서 벌어지는 변란의 불법함을 도도하게 사실대로 기록했다.

우리 선조들 중에선 사관 채세영과 같은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대결하는 바르고 도도했던 정의로운 사관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역사는 굴절되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돼 왔다. 역사가 바르게 기록될 수 있었던 더 큰 이유와 지킴은 세종대왕의 훌륭했던 역사 인식에서도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태종실록이 완성됐다는 보고를 받고 처음에는 무척 보고 싶어 했다.

여러가지로 다난했던 아버지 태종 임금의 정치역정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기록돼 후세에 어떻게 전해질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정몽주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처남을 죽이고, 세종대왕의 처가를 도륙시킨 일 등으로 자기 아버지 태종의 역사가 후세에 나쁘게 기록돼 전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다.

이때 청렴하고, 바르고, 대쪽같은 성품의 맹사성이 세종에게 “실록을 보신다 해도 선왕이신 태종을 위해서 고치지는 못 합니다. 지금 한번 보시기 시작하면 후세의 모든 임금들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라며 “그렇게 되면 모든 사관에게 의구심이 생겨 두려움에 자기 직분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고 그리되면 거짓을 전하는 실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보지 마십시오”라고 서릿발처럼 아뢰니, 이에 세종도 실록 보기를 포기했다. 이것이 후대의 모든 임금들의 본보기가 돼 감히 왕조실록을 보려는 임금이 없게 됐다. 예외적으로 연산군은 자기 친모 폐비 윤씨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실록을 보고 갑자사화를 일으켰지만 중종반정으로 쫓겨났다.

태종의 정적으로서 신권정치를 펼치려 했던 정도전은 세종 이후에도 간신으로 매도됐지만 결국 지금은 조선을 설계한 훌륭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철종 때의 일이다. 수렴청정하던 순원왕후 일파는 강화도령 철종을 임금으로 삼아 안동김씨 세도를 유지시키고자 그 왕통의 불리한 사실들을 기록에서 지우는 작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임금의 동정과 국정을 일기식으로 적어내리는 일성록은 631군데나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는 있었으나 왕조실록만은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조정에서도 불의나 부당한 언행에 대한 최고의 위협과 공갈이 “너는 사필이 두렵지 않으냐? 역사의 기록이 두렵지 않으냐?"였던 것이다. 그래서 임금의 권위를 윗도는 위력을 발휘했던 정의의 저울이 실록정신이었던 것이다.

실록정신은 우리 민족이 국력도 약한 약소국이였으면서도 강대국들 틈에서 수 천 년을 단일 민족으로서 굳건하게 살아온 저력의 버팀목이 되었고 문화민족으로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여 정의를 짓밟지 않으려는 훌륭했던 선조들의 슬기와 바른 실록정신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바른 역사와 전통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공자님의 가르치심에서 힘입은 바가 매우 크다.

우리 선조들은 공자님의 사서삼경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역사는 바르게 기록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리는 용기있고 정의로운 바른 사관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었다. 무지막지한 권력 앞에서도 우리의 옛 사관들은 바른 역사의 기록을 위해서 붓으로 대결했던 것이다.

우리의 훌륭했던 세종과 바르고 의로웠던 우리의 옛 사관들은 동양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사관의 표상인 중국의 춘추시대 진(晉)나라 동호(董弧)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닮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와 우리의 현 정치권을 보면 두렵고 모골이 소연해 짐은 왜 일까.

지략과 병법에 밝은 세기의 명장 한니발의 무적 카르타고가 로마 스키피오에게 허무하게 망한 역사를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카르타고의 성벽은 세계에서 제일 튼튼하고 잘 되어있어 절대 함락 될 수가 없었고 성안에는 온 백성이 10년 먹을 양식과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러한 난공불락의 카르타고였지만 아스틸락스라는 간신 역적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무너진 역사를 보노라면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지금은 걱정이 태산이다.

현재 이 나라에는 역적 아스틸락스들이 국민의 눈에는 다 보이는데 정권 담당자들의 눈에도 보이는지 궁굼하고 두렵기만 하다. 역적 아스틸락스 들이 모두 척결 소탕 되어야 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이 나라가 안정되고 발전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을 믿어본다.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나쁜세력과 현 정치권은 권력은 길어야 10년이고 역사의 기록은 영원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한시도 잊어선 안되고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다.

이중희 포천신문 고문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3년 0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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