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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 화가 지망생인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두 사람은 모두 고아로 자라서 자신들이 무슨 큰 영광스런 자리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도 좋으니 그냥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며 살았다. 그런데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별일이 일어났다. 나랑 재앙(영희)이가 동시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불행이 시작됐다. 착한 엄마 아빠는 빨리 정신을 차리고 돈 안 되는 화가 일을 접고 잔병치레 많은 영희를 돌보기 위해 옷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늘 진심으로 말씀하셨다. 너의 쌍둥이 언니 영희가 우리에게 온 건 우리 가족이 선한 사람을 찾는 신의 심사를 통과한 것이라고. 신은 조금 아프거나 특별한 아이를 세상에 보낼 때 이 특별한 선물을 감당할 만큼 착하고 큰 사람을 고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당첨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신의 실수다.
엄마·아빠는 착하고 큰 사람이 분명하지만 난 절대 착하지도 않고 모든 걸 감당할 만큼 그릇이 큰 사람도 아니다. 난 신의 이 특별한 선물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그리고 영희와 내가 열두 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이 또한 신의 실수고 횡포다. 우린 한동안 엄마를 닮아 착하고 착한 이모의 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모 집에서의 생활은 일 년 만에 그렇게 끝이 났다.
영희가 특별한 건 맞다 영희는 특별히 이상하고 특별히 못났고 특별히 날 힘들게 만드니까, 그때 버렸어야 했나?
나는 착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이유 때문인지 영희를 차마 버리지 못했다. 스물두어 살쯤 일이다. 돈 벌러 지방에 간다는 건 핑계였다. 나는 영희와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일자리도 경기에서 충청으로 충청에서 강릉 통영, 제주로 자꾸 멀리 옮겼다. 약속도 어겼다. 돈만 보내고 자주 보러 가지 않았다.
첨엔 두 달에 한 번 보러 가다가 나중엔 온갖 핑계를 대서 반년 지나고, 다시 일 년 지나 보러 가고, 최근 이년 동안은 연락만 하고 보러 가지 않았다. 나는 그러다 보면 영희가 날 잊어버릴 줄 알았다. 아니면 기다리다 지쳐 영원히 날 안 찾거나,
그러나 끊임없이 언니를 돌보아야 하는 큰 부담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녀는 언니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욕심부리고 일을 하다가 죽을 고비도 넘기고 죽어라고 좋다고 자기를 쫓아다니던 남자들이 언니의 존재를 알고는 모두 떠나버리자 신이 착한 사람에게 준 선물을 거부하고 싶다고 절규한다.
이상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오는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를 둔 영옥 (한지민)의 독백이다. 장애를 둔 부모가 그렇듯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형제 자매로 둔 비장애 형제·자매는 평생 직·간접으로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
먼저 보상심리가 작용한다. 기대하던 대상에게서 그것을 얻지 못한 부모는 비장애 자녀에게서 얻지 못한 부분뿐 아니라 그의 두 배 세배를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비장애 자녀는 공부도 잘해야 하고 운동, 음악, 미술 등등 모든 분야에 뛰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마구 채찍질을 하여 자기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얻으려고 애를 쓴다. 그 기대심리는 어른이 되고 결혼할 때까지 이어지는데 당연히 그 과업을 해 내야 하는 자녀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오히려 일상생활조차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자녀들이 어렸을 때 장애 자녀가 과도한 잘못을 저질러도 모두 용서가 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자녀는 절대 그 비슷한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부모들은 장애인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비장애 자녀는 완벽하기를 바라고 본인들의 기준에 가까워야만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부모들의 관심 또한 장애를 가진 자녀에게는 과도하게 몰입되는가 하면 비장애 자녀에게는 식사나 학교에 가고 오는 정도의 기본 이하의 관심밖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모나 가족들의 관심이 장애 형제자매에게만 쏠리다 보니 비장애 자녀는 투정도 부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때로는 질투심도 느끼고 외로움을 타기도 한다. 더구나 학교를 함께 다닌다든지 하면 모든 돌봄은 비장애 자녀에게 맡겨진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옥은 이런 버거운 돌봄 때문에 다운증후군 언니를 지하철에 두고 내린다.
은연중에 강요되는 부모들의 이런 돌봄 부담은 또래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입장 때문에 자연히 장애 형제를 큰 짐으로 생각하게 되고, 심지어 우리가 죽으면 네가 끝까지 돌봐야 한다는 부모의 부탁 아닌 압력 때문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장애 형제를 보고 주변에서 과도한 관심을 갖거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들과 마주해야 하고, 놀리는 아이들과 매일 싸워야 하는 일까지 더해지면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한참 예민한 시기에는 이성간 친구도 사귀고 친구들끼리 캠핑도 가야 하는데 그때도 발목을 잡는 것은 장애 형제다. 그냥 놔두고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결혼을 할 때도 집안에 비장애 형제를 밝힐 것인가 말 것인가, 만일 밝혔다가 결혼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까지 이어진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시댁에 장애인 동생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있다. 그들 부부는 명문대를 나온 인성도 참 좋은 사람들임에도 말이다.
아는 동생은 발육이 매우 안 되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열댓 살 때쯤 어느 겨울 외가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이모의 약혼자가 왔다. 놀란 외할머니는 그 동생의 존재가 알려질까 봐 옆에 있던 커다란 이불을 그 친구에게 덮어 씌었고 몇 시간을 그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동생은 소변도 마렵고 한겨울이라서 뜨거운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숨도 쉴 수 없었고 움직이면 안 되니까 꼼짝도 못하고 있으면서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었다고 한다. 이상은 극히 일반론적인 이야기일 뿐 실제로는 말 못 할 일들이 더욱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장애인에게만 쏠린다.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나 그들을 돌보아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깊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 대한 대책 또한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들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고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2022년 4월 서울시가 발표한 「고위험 장애인가족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가족돌봄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족돌봄자의 36.7%가 우울‧불안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35.0%가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린 적이 있거나 실제로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는 ‘돌봄 스트레스’(75.5%), ‘경제적 문제’(68.6%), ‘우울‧불안’(66.5%)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장애인 가족은 시간적·체력적 여력이 없어 주변 사람과의 연락 및 만남이 쉽지 않아 대인관계가 소원해지고, 결국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거나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한다는 조사 결과도 도출되었다.
‘사회활동에 어려움이 있다’(21.7%),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 (50.8%), ‘지인 등과 자주 연락을 하지 않거나 만나지 않다’(67.2%) 등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총괄 담당한 서울시복지재단 김현승 연구위원은 “고위험 장애인가구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돌봄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한부모 장애인가구’처럼 가족구조의 취약성이 장애자녀의 돌봄, 부모의 건강문제, 경제적 압박, 사회적 관계 등에 연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생활전반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가족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고위험 장애인가구를 표적화한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수교육법 제 28조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에는 ”- 교육감은 특수교육 대상자와 그 가족에 대하여 가족 상담·부모교육 등 가족 지원을 지원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좋은 법은 참 많은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법에 장애학생과 그 가족들에 대해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장애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에게는 우선 심리적 안정과 지지가 가장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시적이 아닌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심층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상담자는 대상자의 특수성을 감안 하여 생애주기에 따라 전인적으로 이루어지되 특수교육이나 장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장애에 대해 남다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관계된 상담인 만큼 마침 코로나 시대로 인해 비대면 활동이 활성화되었으니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비대면으로 하면 더욱 효과적일 수 있겠다.
며칠 전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가 버거운 양육에 못 이겨 동반 자살을 하였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일년이면 아주 여러번 일어난다. 우리 사회가 장애는 누구의 탓도 아니고 특정인만이 책임지고 가야 할 멍에도 아니며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속히 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위로받고 치유되어 막중한 심리적 현실적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래어본다.
박창진 /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이사장, 꿈이 있는 마을 원장, 한국문인협회회원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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