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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 20년 전, 재경 포천군민회 망년회에서 옛 죽마고우(竹馬故友)들과 한자리에 앉아 옛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내 개울 고기 잡이가 재미있었지 한창 잘 잡으려고 몰려 갔다가 어느 놈이 물고기 씨를 말리는 몰살 약 ‘게랑’을 뿌려 모두 잡고나면 그 해 여름은 개울 놀이는 허탕이었지”
“장마가 지나가면 손 바닥만한 붕어들이 풀섶에 많아 손으로도 잡았지” “유성기 개울에는 뱀장어도 있었지” “복장굴 메기는 ‘어링굴 송운서당’학동들이 많이 잡았지...” “물고기를 많이 잡아 말했다가 겨우내 노인들게 대접하기도 했지...” “그뿐인가 ‘공섬다리’밑으로 내려가면 큰 붕어와 민물조개도 많았다네...” 좌중은 한내 개울 얘기로 꽃을 피우며 해맑은 동심의 말투와 얼굴로 변하고 향수에 젖는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여름이면 온 종일 한내 개울에서 놀았다.
어쩌다 물 안경을 쓰고 작살로 깊은 물 속에서 큰 물고기를 큰다리 밑에서 몇 마리 잡으면 모두 모여 부러운 눈으로 입을 벌리고 쳐다보던 생각이 난다. 유성기 개울에는 큰 메(햄머)로 큰 돌을 내리쳐서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는 애들도 있었으며 강거리라는 그물로 잡기도 하였다. 죽마고우들은 동심으로 돌아가 한내 개울에서 고기잡이로 놀고 고기 한 번 잡아 봤으면 좋겠다고들 손뼉을 치며 좋아들했다.
‘호병골’서 내려오는 물가에는 굵은 철사로 수방(水防)뚝을 만든 돌망태가 겹겹이 쌓였는데 악동(惡童)들이 굵은 철사망태를 부수고 철사를 잘라 썰매를 만들어 겨울놀이를 즐기는지라 호병골 개울은 늘 돌망태가 터지고 둑이 터져 장거리는 자꾸 물난리가 났었다. ‘한내개울’ 큰 냇물이란 뜻이다. 옛날에는 신석기 시대 원시인들이 물고기를 잡아 먹고 움막집을 짓고 살았던 유적지이다(마제석기 시대 돌도끼 발견) 옛날에는 지금의 한내 개울보다 몇 배 넓고 깊었으리라. 8.15해방 12시도 한내 개울에서 맞았다.
8.15해방 후, 미군들이 주둔했다가 여름 장마 물난리를 만나 떠나려 갈 뻔했던 사고도 있었다.(1947년) 한내 개울의 특징은 북에서 남동에서 서로 흘러 내리는 다른 고장 냇물에 비해 남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특징이 있다. 또, 수원산(水源山)동달이,축석고개를 수원지로 발현하여 영평천과 합류 한탄강,임진강을 우리 한내천을 시원(始源)으로 흐르는 물고로 다른 지방에 물을 베푸는 고장이며 한내개울이란 논리가 성립된다. 또, 포천(抱川)땅은 어딜 가던지 냇물이 있고 어구(漁具)가 있어 자주 물고기를 잡아 천렵놀이를 즐기고 시회(詩會)도 연다.
그래서 ‘안을포-(抱)’ ’내천-(川)‘으로 고을 이름을 지었다지 않은가? ’한내개울‘ 옛날 더듬어 다른 고장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한내개울‘이 되도록 가꾸었으면 좋겠다.(양사언 선생도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즐기며 한내천가에서 시를 지었을 것이다)
벽운 김창종 / 수필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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