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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칼럼] 장애와 가족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18일
 
ⓒ 포천신문  
프랑스의 심리상담가 안느 카버드(Anne Bacus)박사는 “가족이란 서로 톱니로 연결된 바퀴와 같아서 한 바퀴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바퀴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가족은 운명공동체이자 사랑의 실천 집합체”라고 강조한다.

가족이란 각자 개성을 가진 여러 구성원들의 신체적 · 정서적 · 경제적인 부분들이 상호의존적으로 연결 되어진 공동체이다. 그러기에 만일 한 사람에게 문제가 발생한다면 당연히 다른 가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만일 우리 가정에 장애아가 출생하거나, 또는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장애를 입게 되는 자녀가 생긴다면 모든 부모들은 엄청난 상실감과 슬픔을 갖게 될 것이다. 그뿐이랴, 어느 가정에 장애인이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가족 구성원 전체, 즉 부모는 물론이요, 형제자매들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장애인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에도 장애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장애인 가족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살기 어려울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아니고 어떤 조사에서는 오히려 장애아로 인하여 가족들이 똘똘 뭉치고 부부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하기도 한다.

한 가정에 장애아 (또는 장애인)가 발생했을 때 그 부모의 심리적인 상태와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면.

장애를 가진 자녀를 맞게 되는 부모는 먼저 충격과 불신, 그리고 부정의 감정을 나타낸다.
● 충격 : 왜 내게 이런 일이? 하는 세상이 끝났듯 한 감정을 가지게 되며 평생 장애를 가진 아이와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함과 고통이 크며, 자녀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그 상처는 더욱 깊다.
● 불신과 부정 : 내 아이는 그럴리가 없어, 왜 내 아이가 장애를 갖나? 하며 장애가 있음을 거부하며 부인하여 진료 기관의 장애 진단을 인정하지 않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장애아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으려고 한다.
-부모는 이 과정에서 수치심과 죄책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 가정에 장애아가 태어났다고 하는데 부끄럽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타인들에게 모욕감을 느껴서 아이를 집에 가두거나 격리, 심지어는 방치하여 기아가 되거나 미아가 되도록 방치 하는 경우도 있다.

● 분노와 질투 : 자신의 자녀가 장애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괴로워하며 비장애아를 가진 부모에 대하여 질투하며 상대적으로 매우 심한 열등감을 가진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주변인들에게 공연한 화를 내며 심지어 진단의 정확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강하게 내세우며 전문가와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 단계에서 주변인들은 그 가족들이 태도를 수용해주며 그 들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경청해주고 그들이 자신의 감정들을 가감 없이 표현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가족들이 감정이 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확인시켜주며 그 가운데 아이와 관련하여 가족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을 찾아서 인지시켜 주며, 가족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갈 때쯤 그 가족에 필요한 자원과 서비스가 있음을 알려주고 필요에 따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가족들의 분노와 문제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며 가족들의 공격적인 말에 논쟁을 하거나 토를 달지 말고, 부정하지 말며 방어하는 말도 피해야 한다.

● 타협 : 내 아이의 장애가 없어질 수만 있다면 어떤 댓가라도 치르겠다는 생각과 행동에 주저함이 없다. 심지어 신과의 협상도 하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장애아 부모들이 이단 사이비 종교나 무당 등 샤머니즘에 빠져서 재산 등을 모두 갖다 바치기도 한다.

나는 두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걷지를 못한다. 내 어머니는 나의 다리가 낫는다는 맹목적인 전제하에 많은 재산을 허비하셨다. 5~6세쯤 후지산 귀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찾아와서 발가벗긴 나를 커다란 밥상 위에 올려놓고 여럿이 빙 둘러서서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고 시간이 좀 흐르면 그들의 주문 외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갑자기 나의 등을 때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세에 눌려 아무리 아파도 나는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주문 외는 소리가 최고조에 다다랏을 즈음에는 그들의 눈에 검은 눈동자는 사라지고 흰자위만 남은 아주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였다. 마치 영화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이런 괴기스러운 모습에 무섭지 않을 어린아이는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 뒤 나의 적극적인 거부로 그들은 오지 않게 됐지만 십 대 중반까지 나는 그 후유증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그들의 동자 없는 허연 눈이 나타나서 눈을 감을 수 없었고,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도 화들짝 놀라 잠을 깨기 일 수였다. 몇 번인가는 깨고 보니 이불에 오줌을 싼체였다. 그런 밤을 꼬박 새우는 불면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십 대 후반 이웃집 형의 등에 업혀서 난생처음 교회에 갔다. 친절한 사람들과 다정한 눈빛, 따뜻한 말 한마디, 내게는 정말 별천지였다. 지금까지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 받아보지 못한 환대로 인해 내 마음이 황홀할 때 쯤 근엄하게 생긴 장로님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이 어린 영혼을 위해 기도해 줍시다” 하면서 목양실로 데리고 갔다. 의자에 앉친 후 나를 중심으로 빙 둘러섰다. 내 머리에 손을 얹고는 뭐라고 뭐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뭐 기도를 한다구?” 기도한다니까 예의 그 후지산 귀신을 믿던 사람들 생각이 났다. 나는 내 머리에 얹혀진 손들을 치우려고 힘을 썼지만 내 힘은 한계가 있고, 그들은 내가 머리를 흔들며 피하려고 하면 여럿이 더욱 힘껏 눌러대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탈출의 통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나는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예전의 그 공포스러운 장면이 재현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였다.
   
이윽고 통성기도가 시작되자 나는 누구의 눈이 가장 먼저 검은 동자가 사라지고 흰자위만 번득일 것인가 하며 초긴장 상태에서 빙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살펴 보았지만 그들은 한 사람도 눈을 뜨지 않았고 감은 눈에는 검은 동자도 흰자위만 남은 눈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기도를 멈췄고 기진맥진한 나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때는 예배당에서 새벽 4시면 종을 쳤다.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가도 예배당 종소리가 들리면 나는 공포감이 사라졌고 마음이 안정되니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찾아오신 하나님,
그렇게 어루만져 주신 하나님.
그렇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내 어머니는 그 어려운 시절에 여중을 졸업하신 분이다. 그러나 자식의 문제 앞에서, 이성의 무슨 고상한 숙고나 논리의 깊은 발현 따위는 길가에 싸버린 개똥이였다. 혹시 주변에 이런 분들을 본다면 당신의 전문적인 견해를 강요하거나 비이성적인 행동에 대해 애정없이 비평하는 일은 하지 마시라.

● 우울과 좌절 : 현실을 수용하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미래요 희망으로써의 아이가 아닌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으로서의 아이에 대한 슬픔으로 우울증을 앓게 되며, 아이의 장점은 보이지 않고 장애로 인한 여러 가지 결함만이 도드라지게 보임으로써 그때마다 좌절감을 갖게 된다.
-이 경우 아이에 대한 감정을 계속 고지시켜주며 약간의 희망이 보이면 함께 의논하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부모 그룹 등에 참여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일 수밖에 없는 우울 증세인 경우 만성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전문의와 상담을 유도하고 권해주어야 한다.

● 수용 : 아이의 단점보다 장점과 강점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치료, 교육 등에 주도적인 입장을 가지고 찾아 나서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진취적으로 변한 그에게 끊임없이 격려한다.

-이쯤에서는 다른 가족들과 짐을 나누어 가질 것을 권하고 또 실제로 역할 분담을 지도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적절한 교육 기관 등을 연결해 준다.

페스탈로치는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쁨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빛나는 기쁨은 가정의 웃음이다. 그다음의 기쁨은 어린아이를 보는 부모들의 즐거움인데 이 두 가지 기쁨은 사람의 가장 성스러운 즐거움이다”라고 했다.

장애아의 탄생으로 인하여 기쁨이 사라지고 아이를 볼 때마다 즐거움보다는 한숨이 앞서던 가정이지만 모든 단계를 넘어서면 장애아를 통한 그 가정의 축복된 삶의 예정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창진 /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이사장, 꿈이 있는 마을 원장, 한국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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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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